본래 고려시대의 장명진(長命鎭)과 연풍장(連豊莊)이 합하여 생긴 지명이다. 고려 때에 장명진은 황주에 속하였고 연풍장은 안악에 속하였는데, 1390년(공양왕 2)에 겸감무를 두었다.
1396년(태조 5)에 장명진을 없애고 연풍에 속하게 하였다가 1414년(태종 4)에 장련현으로 하였다. 그 뒤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은율군으로 편입되어 장련면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구월산(九月山)에서 두개의 산줄기가 대동강 하구 쪽으로 뻗어 있었고, 이 사이를 삼파수(三派水)가 흐르면서 비교적 넓은 유역평야를 만들었다.
또한, 금음복산(今音卜山, 또는 今卜只) 봉수가 서해안지방을 남북으로 연결하였고, 교통망으로는 박산역(朴山驛)을 통하여 안악과 이어졌으며, 북쪽은 대동강의 대진(大津)을 건너 삼화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해안지방에는 강소창(舡所倉)이 있어 이곳의 물산을 모아 서울로 운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