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군 ()

대동여지도 중 황해도 장연, 송화 부분
대동여지도 중 황해도 장연, 송화 부분
인문지리
지명
황해도 서단에 위치한 군.
정의
황해도 서단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벽성군, 서쪽은 황해, 남쪽은 대동만을 건너 옹진군, 북쪽은 송화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4°39′∼125°20′, 북위 38°03′∼38°21′에 위치하며, 면적 1,072.8㎢, 인구 11만 4681명(1944년 현재)이다. 1개 읍 9개 면 120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장연읍 읍후리이다.

자연환경

멸악산맥의 지맥인 불타산맥(佛陀山脈)이 군의 남쪽 중앙을 동서로 뻗어 태산봉(泰山峰, 380m) · 병풍산(屛風山, 349m) · 불타산(佛陀山, 608m) 등의 낮은 산이 솟아 있다. 북쪽의 군계에는 광석산(光石山, 410m) · 태자봉(太子峰, 514m) · 박석산(礡石山, 596m) 등의 산줄기가 줄지어 있다.

불타산맥의 서쪽 끝 장산곶(長山串) 앞바다는 심청(沈淸)이 뛰어들었다는 인당수(印塘水)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장산곶 남쪽의 서해 상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불타산에서 발원하는 남대천(南大川)이 서류하여 황해로 흘러 들어가며 유역에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동남부에서는 광탄천(廣灘川)이 곡류, 대동만으로 들어가는데 하류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전개된다.

기후는 바다에 접하고 있으므로 해양성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 기온 10.5℃, 1월 평균 기온 -6.1℃, 8월 평균 기온 25.3℃이며, 연 강수량은 900㎜이다.

역사

[고 대]

구석기 시대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해안면 몽금포리의 신석기 시대 패총 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와 함께 희귀하게 관옥이 출토된 바 있다.

용연면 석교리에서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네 곳이 발굴되어 무문토기와 반월도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해안면 몽금포리의 초기 철기 시대 패총에서 철기 유물도 출토되어 신석기 시대 이후의 선사 시대 문화가 계속 발전한 곳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였으며 이미 이때부터 장연으로 불리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그 영토가 되어 757년(경덕왕 16) 폭지군(瀑池郡 : 지금의 해주)에 소속되었다. 지금의 목감면 이서 지역은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부진이(付珍伊)의 일부였고, 삼국 통일 후 역시 신라의 폭지군에 소속되었다.

[고 려]

고려가 건국될 때부터 해주 소속 지역으로 존속되다가 1018년(현종 9) 옹진현의 속현이 되었고, 1106년(예종 1) 처음으로 감무가 부임하였다.

고려 초엽 조운을 위하여 해위포(海葦浦 또는 葦浦)가 두어졌고, 11세기 후엽 안란창(安瀾倉)으로 개편되어 황해도 전역의 세곡을 개성까지 운반하는 조운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고려 말 왜구가 여러 차례 장연을 노략질한 까닭도 바로 안란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구의 피해가 심하여지자 해안에 가까운 후남면 고현리에 있던 관아를 두견산 아래의 현 읍 소재지로 옮기게 되었다.

현재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되어 있는 백령도와 대청도 · 소청도 등은 모두 본래 장연 소속지였으며, 대청도는 고려 후기 원나라의 유배지로 이용되어 순제(順帝)가 태자 때 유배되어 온 외에도 여러 사람이 유배되어 왔던 곳이다.

[조 선]

개국한 해인 1392년(태조 1) 국방상의 중요성에 따라 만호(萬戶)가 감무를 겸임하게 되었고, 10년 후에 요새로서 진(鎭)이 설치되어 병마사가 수령직을 겸하게 되었다.

1414년(태종 14) 영강현(永康縣)을 합속하여 지명이 연강(淵康)으로 고쳐졌다가 2년 후 다시 분리되고, 그 동안 왜구의 침입으로 폐지되어 있던 해안현(海安縣)이 합속되어 다시 장연현으로 복귀하였다.

1423년(세종 5) 이후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가 부임하여 수령 직을 겸해 오다가 1467년(세조 13)부터 현감이 부임하게 되었다. 1623년(인조 1) 후금(後金)과의 관계가 긴장된 가운데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764년(영조 40)에는 둔전에 소속되어 세를 바쳐 오던 농민들이 가렴주구를 일삼는 둔감(屯監)을 살해하여 9년간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장연의 수령은 1768년(영조 44)부터 수군영장(水軍營將)을 겸하여 바다에 인접한 황해도 5개 군 · 현의 수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장산곶과 몽금포가 조운 및 수로를 통한 교역에서 점하는 중요성이 매우 높았으며, 장산곶 앞바다는 「심청전」에서 심청을 수장하였다는 인당수라고 전하여진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15세기 초엽의 호구는 총 964호 2,104인에 불과하였으나, 1759년(영조 35)에는 5,844호 2만 4735인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18세기에는 장시(場市)가 12곳이나 개설되어 상업이 크게 발달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근 대]

이미 천주교를 수용하고 있던 이곳에서는 개신교 또한 1894년(고종 19) 국내에서 최초로 한국인 손으로 건립되었다는 솔내교회를 중심으로 전파되었다. 구미포와 몽금포의 해수욕장이 언더우드(Underwood, H. G.) 등 서양인 선교사의 휴양지로 이용됨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었다고 한다.

1895년 지방행정 체제가 개혁됨으로써 장연군으로 개편되었다. 1905년 정윤봉(鄭允奉) · 이진태(李震台) · 김병규(金秉奎) 등이 의병을 일으켰고, 장규섭(張奎燮)은 의병의 군복을 조달하였다. 홍천에서 관동의병장으로 활약하던 박장호(朴長浩)도 이 군 출신으로, 3·1운동 후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여 도총재로서 활동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김병헌(金秉憲) · 배행원(裵行元) · 김기풍(金基豐) · 김두원(金斗元) · 이명서(李明瑞) 등 이 군 출신의 여러 사람들이 대한독립단원으로 활약하였다.

1935년 당시 1개 읍 9개 면으로 편성되어 있었으며, 1942년의 인구는 총 2만 1129가구 11만 1592명이었다.

유물 · 유적

지리적으로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하여 한 · 중 문화 교류의 통로가 되어 오던 이 군은 삼국 시대 이래로 불교의 선착지가 되었고, 기독교가 가장 빨리 들어와 종교적인 유적이 많다.

이 군에 불사가 처음 들어선 것은 우리 나라 최고찰의 하나로 알려진 순택면 괴림산의 폐사인 학림사(鶴林寺)이다. 사적기에 의하면, 이 절은 신라 눌지왕 때 묵호자(墨胡子)와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학림사지오층석탑은 고찰 학림사의 일면을 엿보게 하는 것으로 일제 강점기에 보물로 지정된 바 있다.

1845년(헌종 11) 중국 상해에서 한국 최초의 신부로 서품된 김대건(金大建)은 같은 해 10월 18일 귀국하였는데, 10여 년 전 천주교 연구차 마카오로 함께 갔던 최양업(崔良業)이 만주에서 붙잡혔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혼자 이 군 앞바다에 있는 백령도로 왔다가 순라에 붙잡혀 신부가 된 지 1년여 만에 참수형을 받았다.

대구면 송천리(솔내) 일대는 이 땅에 찾아온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가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고 개신교의 씨를 뿌린 유서 깊은 고장이다.

1887년(고종 24)에는 황해도 전역을 순방하던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가 솔내에 와서 서상륜(徐相崙) · 서경조(徐景祚) 등 7명의 신자에게 한국 최초로 세례를 하였고, 1894년에는 이곳에 한국 최초의 예배당이 세워졌다.

『동국여지승람』에 보이는, 객관 동쪽에 있던 진서루(鎭西樓)와 읍성 남문루(南門樓)를 비롯하여 군의 관아 서쪽에는 1769년(영조 45) 현감 홍화보(洪和輔)가 세운 망경루(望景樓)가 있으며, 그 북쪽 언덕 위에는 영조 때의 부사 이유(李瑜)가 건립한 감은정(感恩亭)이 있다. 삼문 북쪽에 기암이 깎아 서고 청류가 굽이치는 황학대(黃鶴臺), 장연읍 읍남리죽강 석벽 위에는 석간정(石間亭)이 있다.

장연 군청 뒤 언덕에는 1396년(태조 5) 현감 송공필(宋公必)이 쌓은 토성의 유지가 있다. 후남면 고현리에는 옛 읍치(邑治) 고현지(古縣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여러 채의 농가만 있어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이(里)와 동(洞)의 이름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는 고현산과 성현산(城峴山)이 좌우로 병풍처럼 둘려 있으며, 암벽이 솟은 가운데로 천연의 크고 넓은 동학(洞壑)이 있다.

교육 · 문화

문헌에 따르면 이 군의 교육기관 효시는 고려 말에 세워진 장연향교로 여기서는 주로 유학을 강론하였다. 1709년(숙종 35)에는 용암서원(龍巖書院)이 창건되었는데, 여기에는 주희(朱熹)와 이이(李珥)가 배향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교육 제도가 실시된 뒤 해서사립중학교(海西私立中學校)가 설립되어 잠시 운영되었다. 이 학교는 우리 나라 기독교의 선착지인 대구면 송천리(솔내)에 교회가 들어선 다음 미국 선교사가 중등 교육과정으로 설립한 것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 직전 정식 인가를 받지 못하여 송천공립보통학교에 통합되었다.

한편, 초등 교육기관으로는 장연읍에 사립으로 건립된 경애(敬愛)보통학교와 흥풍(興風)보통학교가 있었으며, 1면 1교의 교육 정책에 따라 각 면에도 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1933년 장연읍의 독지가들이 뜻을 모아 인재를 양성하고 향토와 황해도 내의 농업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한 장연공립농업학교가 있다.

한편, 이 군은 황해도의 서단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상 몽금포 · 비석포(碑石浦) · 구미포 · 아랑포 등 배가 닿을 수 있는 포구가 많아 향리에서 초등 교육과정을 마치고는 해상 교통을 이용하여 진남포 · 평양 · 인천 · 서울 등지로, 육로로는 해주 · 개성 등지로 유학하는 진취적 기상이 일찍부터 조성되었다.

이와 같이 대부분 외지로 유학하는 이유는 군내에 걸출한 대부호가 없었다는 점도 복합적 요인의 하나였지만 전반적인 군세(郡勢)에 비하여 장연농업학교를 제외하고는 중등 교육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육세(敎育勢)가 저조한 반면, 문화면에서는 중국과 인접한 지정학적 요인으로 불교 및 기독교의 선착지가 되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종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군민의 의식 개혁이 다른 지역보다 앞서갔다. 무엇보다도 문향(文鄕)으로서의 전통과 긍지를 지니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우리 나라 현대 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양주동(梁柱東) · 강경애(姜敬愛) · 노천명(盧天命) 등의 문인이 배출되었다.

용연면 용정리에 있는 용정(龍井)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옛날 용정물은 황무지를 그대로 흘러내렸고, 그 부근에 한 무인(武人)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꿈에 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자기는 저 앞 우물에 사는 청룡인데 어디서 왔는지 황룡이 나타나서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내일 자기가 황룡과 싸울 때 황룡을 쳐들어 허리를 물 위에 떠오르게 할 터이니 그때 활을 쏘아 달라고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가 활을 쏘아 물 위에 떠오른 황룡의 허리를 명중시키자 붉은 핏물이 우물에 넘쳐흐르면서 구름이 일던 하늘이 다시 맑아졌다. 그러자 그날 밤 꿈에 노인이 다시 나타나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말하기를 은혜를 갚기 위하여 저 앞의 황무지를 논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이튿날은 새벽부터 천둥이 치며 억수같은 비가 내리고 우물물은 강물처럼 넘쳐흘러 온 벌판을 뒤덮었다. 얼마 뒤 날이 개어 보니 보잘것없던 황무지가 몇 백 마지기의 논으로 변하여 있었다고 한다.

산업 · 교통

남대천 유역의 광대한 평야에서는 수리시설이 좋지 않아 밭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농작물로는 쌀 · 콩 · 잡곡 등이 생산되며, 특히 보리의 경작면적이 도내에서 으뜸으로 그 수확고도 역시 많다. 또한, 육지면(陸地棉)의 재배가 도내 생산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주로 북부 지방으로 반출된다.

지리적 여건상 수산자원도 풍부하여 해안가에서는 수산업이 활발하다. 수산물로는 까나리 · 홍어 · 갈치 · 멸치 등이 많이 잡히며, 특히 대구면 금수리에서는 돌김이 많이 생산된다.

한편, 광대한 산줄기가 연이어져 목재의 산출도 많다. 지하자원으로는 낙도면의 낙산광산(樂山鑛山)에서 금이 많이 채굴되며, 몽금포 · 구미포 · 대청도 등에서 채취되는 모래는 세백사(細白砂)라 하여 유리 원료로 주로 일본에 수출된다.

장연읍 곡암리에서는 곡암옹기가 생산되는데, 각종 질그릇과 오지그릇이 다른 지방의 것보다 질이 좋다. 따라서, 곡암옹기는 장연의 특산물로 꼽혀 군내의 수요는 물론 송화군 · 신천군 · 안악군 · 재령군으로도 반출되는 인기 품목이다.

교통은 황해선 철도가 신천 방면에서 장연읍까지 개통되어 화객 수송이 편리하다. 또한, 2등도로가 송화군 연정면에서 장연읍을 경유하여 목감면을 지나 옹진군으로 이어진다. 이 밖에도 읍에서 서쪽으로 몽금포 방면과 몽금포에서 다시 동남부 해안을 따라 태탄 간에 3등도로가 뻗어 있다.

그리고 해안가의 주민은 덕동포(德洞浦) · 비석포 · 구미포 · 태탄포 · 몽금포 등의 항구를 이용하여 해상으로 서울과 경인 지방을 내왕한다.

주요 명승으로는 몽금포와 구미포 해수욕장이 국내외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며, 명사십리의 경승은 우리 나라 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용연면 용정리에 용이 있는 우물로 알려진 용정, 그리고 두견산 남쪽 기슭에 있는 화굴(花窟)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화굴은 일명 ‘꽃재굴’이라고도 하는데, 굴의 길이는 260m이며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사방에 여러 형태의 종유석이 가관을 이룬다. 또한 맑은 샘물이 시내를 이루어 흐른다. 단오절에는 굴 앞에서 씨름판이 벌어지며 굴 안에는 등불을 켜 놓아 굴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다. 장연 군민이 다같이 즐길 수 있는 명소로 꼽힐 뿐 아니라 봄 · 여름 · 가을에는 먼 곳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성황을 이룬다.

이 군의 여덟 군데의 경치를 말하는 장연팔경도 있다. 두견의 봄 경치 감상(杜鵑賞春), 마암에서 나그네를 보냄(馬巖送客), 무산의 비가 갠 하늘의 밝은 달(茂山霽月), 죽강의 이슬비(竹江細雨), 불타에 돌아가는 구름(佛陀歸雲), 금사에 지는 해(金沙落照), 아랑에 돌아가는 돛단배(阿郎歸帆), 화굴에서 들리는 거문고 소리(花窟聽琴) 등이다.

읍 · 면

[장연읍 長淵邑]

군의 북부에 위치한 읍. 읍 소재지는 읍후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옛 장연군의 설산면(雪山面) · 산정면(山亭面) · 순택면의 일부가 합쳐져 설산면으로 편성되고 다시 장연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37년 장연읍으로 승격되었다.

남단에 불타산맥의 일부가 뻗어 산지를 이루지만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평야 지대이다. 특히, 남대천과 그 지류 유역은 비교적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읍의 주요 생산 지대를 이룬다. 토지가 비옥하고 수리 시설도 잘되어 각종 농산물이 재배된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밀 · 조 · 콩 · 팥 · 면화 · 과실 등이 생산된다. 공업도 활발하여 대규모의 타면(打綿) 공장과 제도(製陶) 공장이 있다. 교통은 황해선의 종착역인 장연역이 설치되어 있고, 태탄과 은율 방면으로 2등도로가, 몽금포와 신천 방면으로 3등도로가, 그 밖의 주요 마을로는 등외도로가 뻗어 있어 편리하다.

명소로는 서북부에 두견산이 있고, 그 남쪽 끝에 종유동굴인 꽃재굴[花窟]이 있어 읍민의 소풍 · 행락지로 이용된다. 유적으로는 곡암리에 천불사사적비(千佛寺事蹟碑)가 있다.

읍후(邑后) · 읍내(邑內) · 읍남(邑南) · 읍동(邑東) · 읍서(邑西) · 읍전(邑前) · 읍외(邑外) · 길촌(吉村) · 칠북(漆北) · 칠남(漆南) · 죽계(竹溪) · 곡암(谷巖) · 선정(仙亭) 등 13개 이가 있다.

[낙도면 樂島]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삼천리이다. 서부에 불타산이 높이 솟아 그 지맥이 동쪽으로 뻗어 도처에 낮은 구릉이 산재한다. 그 구릉 사이를 어천(魚川)을 비롯한 남대천의 지류가 곡류를 거듭하며 서류하는데, 그 유역에 분지형의 평지가 형성되어 주요 생산 지대 및 거주 지역으로 이용된다.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 · 콩 · 조 · 대마 등이 생산된다. 지경리에서 오응리에 걸쳐 여러 군데 금광이 산재하여 낙산금광구(樂山金鑛區)라 불린다. 한때는 종업원이 600명에 달하는 대규모의 광산 지역이었다.

교통은 황해선 철도가 북서부를 서남으로 뻗어 낙산 · 낙도의 두 역이 설치되어 있다. 또, 장연읍 · 태탄간의 2등도로가 중앙부를 동서로 지나며, 장연읍에서 시작된 3등도로가 광산 지대를 지나 송화군 봉래면 수교리에 이른다.

삼천(三川) · 지경(地境) · 오응(五鷹) · 송죽(松竹) · 도습(道習) · 세마(細馬) · 석장(石長) · 천사(千寺) · 낙흥(樂興) · 월장(月嶂) 등 10개 이가 있다.

[대구면 大救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송천리이다. 북부에 멸악산맥에 속하는 삼봉산(三峰山, 400m) · 효봉(梟峰, 463m) 등이 솟아 점차 남쪽으로 경사를 이룬다.

따라서, 북부의 산지에 비하여 남부에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며, 남쪽의 경계는 대동만과 접한다. 북부의 산지에서 발원한 작은 내들이 평야를 지나 남쪽으로 흘러 대동만으로 들어간다.

해안선은 대체로 단조롭고 사빈 해안을 이루는데 동부 해안에는 군데군데 암초가 있다. 금수리 앞바다 2㎞ 지점에 육도(陸島, 또는 船箭島) · 오작도(烏鵲島)가 있다. 반농반어의 생활을 하는 주민이 많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 · 조 · 콩 등이 있으며, 주요 수산물로는 도미 · 갈치 · 새우 · 조기 등이 잡힌다. 구미리에는 김을 양식하는 곳도 있다. 해변의 가는 모래인 규사는 유리의 원료로 이용된다.

교통은 남부의 해안을 따라 3등도로가 동서로 뻗어 동쪽으로는 태탄, 서쪽으로는 몽금포에 이른다. 구미리는 근해 항로의 기항지가 되는 해륙 교통의 요지이다. 구미리의 해안인 구미포는 갑각(岬角)이 돌출하였으며 수심이 깊은 좋은 항구로 꼽힌다.

구미포 해수욕장은 경치가 좋고 모래가 고와서 국내외의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송천리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교회가 있다.

송천(松川) · 선원(仙源) · 선대(船垈) · 가전(佳田) · 송탄(松灘) · 교평(橋坪) · 구미(九美) · 용반(龍蟠) · 두산(杜山) · 금수(金水) · 용전(龍田) 등 11개 이가 있다.

[목감면 牧甘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도원리이다. 서쪽에 극락산(極樂山, 352m)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동쪽으로 뻗어 몇 개의 구릉이 있을 뿐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이다.

극락산의 동부와 남부를 광탄천의 두 줄기 상류가 흘러 유역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주요 생산 지대 및 거주 지역으로 이용된다.

특히, 신문리 일대의 평야는 토지가 기름질 뿐 아니라 수리 시설도 잘되어 군내에서 손꼽히는 쌀 생산지이다. 교통은 2등도로가 장연과 태탄 간을 남북으로 지나고, 3등도로가 해주와 신천읍 방면으로 통하고, 그 밖의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뻗어 있다.

도원(桃源) · 지촌(芝村) · 극락(極樂) · 용봉(龍峰) · 나당(羅堂) · 신문(新文) · 노평(魯坪) · 공세(公稅) · 무산(茂山) · 화금(花錦) · 당안(堂岸) · 기동(基洞) 등 12개 이가 있다.

[속달면 速達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상태탄리이다. 동단에 속달산(速達山, 317m), 서쪽에 오반산(五盤山, 274m)이 솟았으며 이 사이에 200∼300m의 구릉이 연이어 있다. 지세는 북부의 산지대와 남부의 평야 지대로 나뉜다.

북부에는 광탄천의 상류가 흐르며, 남부에는 그 본류가 면의 동단을 곡류하며 대동만으로 들어가는데 하류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전개된다. 특히, 토지가 비옥하여 각종 농산물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그러나 하구는 갯벌이 계속되어 선박의 출입에 적당하지 못하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 · 조 · 콩 등이 생산된다. 수산물로는 까나리와 조개류가 조금 잡힐 뿐이다. 교통은 태탄리를 기점으로 2등도로가 장연읍과 옹진군의 읍저리로 뻗어 있고, 3등도로가 몽금포로 연결되며, 그 밖의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통한다.

상태탄(上苔灘) · 하태탄(下苔灘) · 속달(速達) · 용산(龍山) · 성오(城梧) · 영남(嶺南) · 남교(南橋) · 호암(虎巖) · 영서(嶺西) 등 9개 이가 있다.

[순택면 蓴澤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비석포리이다. 동북단에서 서남쪽에 걸쳐 박석산(礡石山) · 송월산(松月山) · 야미산(夜味山, 320m) 등이 연달아 솟아 있으나 점차 동남으로 완경사를 이루어 말단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전개된다.

특히, 남대천과 그 지류의 유역평야는 대부분이 논으로 되어, 상좌리에 수리조합이 조직된 이래로 이곳은 군의 쌀 생산량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 · 콩 · 메밀 · 조 · 잎담배 등이 생산된다. 교통은 비석포리에서 장연읍으로 3등도로가 지나며, 동부에는 장연∼송화간의 2등도로가 남북으로 뻗어 있다. 그 밖에 비석포리에서 각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연결된다. 유적으로는 괴림산(槐林山)의 학림사 경내에는 오층석탑이 있다.

비석포(碑石浦) · 박산(礡山) · 여산(礪山) · 상좌(上左) · 승탑(僧塔) · 종현(鐘峴) · 눌산(訥山) · 창현(蒼峴) · 두현(杜峴) · 갈사(葛寺) · 왕제(汪濟) · 학현(鶴峴) 등 12개 이가 있다.

[신화면 薪花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효제리이다. 북부에 광석산, 동부에 태자봉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 도처에 100∼200m의 구릉이 산재한다. 그러나 서남부는 대체로 평지를 이루어 효제천(孝悌川) · 휴서천(休西川) 등의 작은 내가 흘러 유역에 작은 규모의 평지가 형성되어 경작지로 이용된다.

서해안은 낮은 사빈해안으로 굴곡도 적어 배가 닿기에 적당하지 못하다.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연안 일대의 주민 가운데는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많다.

주요 농산물로 쌀 · 콩 · 보리 · 조 · 메밀 · 면화 등이 생산되며, 수산물로는 까나리 · 홍어 · 갈치 · 멸치 · 새우 등이 어획된다. 교통은 효제리를 중심으로 각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통할 뿐이다.

효제(孝悌) · 삼현(三峴) · 도산(桃山) · 야랑(野郎) · 금산(金山) · 자양(紫陽) · 대사(大社) · 쌍월(雙月) · 군산(君山) · 신령(新嶺) · 휴서(休西) · 휴동(休東) · 삼은(三隱) · 서곶(西串) 등 14개 이가 있다.

[용연면 龍淵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석교리이다. 불타산맥의 서쪽 지맥이 남부를 동서로 뻗어 성주봉(聖主峰, 554m) · 삼봉산(三峰山, 400m) 등이 솟아 남부는 일반적으로 높은 산악 지대를 이룬다. 그러나 북쪽으로 차츰 경사를 이루어 도처에 100m 내외의 구릉이 산재한다.

남대천의 유역 평야는 토지가 기름질 뿐 아니라 용정리의 용정소를 이용하는 수리 시설도 잘되어 밭보다는 논이 훨씬 많다. 특히, 북서부 남대천 하구 일대의 갯벌은 간척 사업의 성공으로 논의 면적을 더욱 증가시켰다. 이에 따라 쌀의 생산량은 군내의 1위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 · 콩 · 조 · 메밀 등이 생산된다. 교통은 장연∼몽금포 간의 3등도로가 면의 중앙부를 동서로 지나며, 그 밖에 주요 마을로 등외도로가 개설되어서 불편하지 않다.

석교(石橋) · 복구(福龜) · 서원(書院) · 제산(祭山) · 기남(基南) · 송계(松溪) · 용연(龍淵) · 용정(龍井) · 근록(芹轆) · 초동(草垌) · 길동(吉垌) · 태화(台化) · 우평(牛坪) · 신오(新梧) · 도경(道景) 등 15개 이가 있다.

[해안면 海安面]

군의 서남단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몽금포리이다. 서남쪽이 황해에 돌출한 소뿔 같은 모양의 반도로 된 면이다. 불타산맥의 말단이 남부를 동서로 뻗어 병풍산 · 태산봉 등이 솟아 있고 서쪽 끝은 장산곶이 된다.

지세상평야는 북부와 남부의 해안 지대에 전개된다. 남부 해안은 동단에 대동만(大東灣)이 있지만 대체로 단조롭고 절벽이 많다. 그러나 반도부와 북해안은 사빈 해안으로 사구 · 석호가 발달되어 몽금포 · 남대천 하구의 만(灣) 등의 출입이 있다.

북부 평야에서는 쌀을 비롯하여 조 · 콩 · 보리 등이 생산된다. 남부 해안 지대에는 까나리 · 홍어 · 새우 · 패류 등의 수산물이 풍부하다.

교통은 3등도로가 몽금포를 중심으로 동남으로 속달면 방면, 동쪽으로 장연읍 방면으로 통한다. 그 밖에 해안 일주 도로와 남북 간의 여러 등외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해상 교통 역시 몽금포가 중심이 되어 항해 선박의 기항지로서 각종 선박의 출입이 빈번하다.

몽금포는 서도민요의 「몽금포타령」으로, 또 해수욕장으로도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해수욕장의 금사낙조(金沙落照)는 장연팔경의 하나이다. 장산곶 부근은 물길이 세고 험한 바위와 암초가 있어 항해가 어려운데, 「심청전」의 배경이 된 인당수가 바로 장산곶의 앞바다이다.

몽금포(夢金浦) · 순계(蓴溪) · 부성(釜城) · 봉대(烽臺) · 병산(屛山) · 구진(舊鎭) · 오차진(吾叉鎭) · 장산(長山) · 선교(仙橋) · 신안(新安) · 대촌(大村) 등 11개 이가 있다.

[후남면 候南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남호리이다. 북부에 불타산, 서부에 효봉이 솟아 있으며, 그 여맥이 남쪽으로 뻗어 평야로 이어진다. 따라서, 북부는 구릉성 산지를 이루지만 남부에는 평야가 전개된다. 평야부의 작은 내는 모두 남쪽으로 흐르는데, 특히 남호천(南湖川) 유역은 토지가 비옥하여 각종 농작물이 경작된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 · 조 · 콩 · 메밀 등이 생산된다. 중평리에서는 도료(塗料)로 이용되는 백토(白土)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사기(砂器)를 제조하여 인근에 공급한다.

교통은 3등도로가 남부를 동서로 지나 몽금포와 태탄에 이르며, 이와 병행하여 북부에도 등외도로가 뻗어 있다. 유적으로는 성저리에 고현성지가 있고, 고현리에는 옛 장연읍치가 있던 곳으로 고현지가 남아 있다.

남호(南湖) · 부양(釜洋) · 한애(寒艾) · 도지(道知) · 원촌(院村) · 학포(鶴浦) · 곡정(谷井) · 삼가(三佳) · 성저(城底) · 고현(古縣) · 중평(中坪) · 향초(香草) · 반계(盤溪) 등 13개 이가 있다.

광복 후 변천

1952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옛 장연군의 북부 반가량인 장연읍을 비롯하여 용연면(龍淵面)의 일부와 순택면(蓴澤面) · 신화면(薪花面) · 낙도면(樂道面)으로 개편되었다.

현재 황해남도 서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삼천군, 남쪽은 용연군, 북쪽은 과일군, 서쪽은 황해에 접하여 있다. 동경 124°51′∼125°13′, 북위 38°09′∼38°21′ 사이에 있으며, 면적 406. 8㎢, 인구 6만 7200여 명이다.

행정구역은 장연읍과 낙연노동자구, 산천(山川) · 명천(明川) · 화원(花源) · 청계(淸溪) · 박산(礡山) · 산수(山水) · 학림(鶴林) · 눌산(訥山) · 창파(蒼波) · 샘물 · 광천(廣天) · 금사(金寺) · 백촌(白村) · 추화(秋花) · 삼산(三山) · 세마(細馬) · 낙흥(樂興) · 석장(石長) · 선정(仙亭) 등 19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장연읍이다.

군의 북쪽에는 구월산(九月山, 954m)이 남쪽으로 월개산(月蓋山, 505m)을 거쳐 박석산(礡石山, 594m) · 태자봉(太子峰, 515m)에 이르고, 서쪽으로 건지산(乾支山, 387m)에 이어진다. 남쪽은 멸악산맥이 경계를 이루면서 멸악산맥의 한 가닥인 불타산맥(佛陀山脈)으로 갈라지는 극락산(極樂山, 352m)에서 불타산(606m)으로 이어진다.

중앙은 장연남대천(長淵南大川)의 유역에 장연평야가 전개된다. 장연남대천 하구에는 사주가 발달하지 못한 석호가 있고, 북쪽 언덕에는 경승지로 알려진 야미산(夜味山, 320m)이 솟아 있다. 지질은 상원계에 속하는 규암 · 석회암 ·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양은 산림갈색토가 주를 이루며, 사질토가 많다.

연평균 기온 9.6℃, 1월 평균 기온 -5.3℃, 8월 평균 기온은 23.8℃이다. 연 평균 강수량은 1,100㎜ 내외이다. 장연남대천의 하구는 강 수면 높이의 변화가 심하여 홍수의 해를 많이 입는다.

장연평야는 장연남대천과 여러 개의 지류에 의하여 관개시설이 잘 갖추어져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옥수수 · 밀 · 보리 · 수수 · 콩 · 팥 등의 생산량도 많다. 각종 채소와 박하 · 담배도 많이 가꾸며, 소 · 돼지 · 양의 사육 두수도 많다. 또, 사과 · 배 · 복숭아 등이 생산되고 있다. 누에치기로 명주 생산량도 많아졌다.

산림면적은 군 전체 면적의 60%를 차지하며, 소나무 외에 참나무 · 이깔나무 등의 용재림과 동백나무 · 호두나무 · 잣나무 등도 새로 많이 보급되었다.

군의 북동쪽에 있는 낙산광산에서는 금 · 은이 산출되고, 그 밖에도 구리 · 납 · 아연 · 인회석 등의 광산이 있었으나 대부분이 폐광 상태에 버려졌다. 군내에는 식료품 · 일용품 · 직물 · 피복 · 제지 · 화학 · 제약 등의 공장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 사정으로 이들 공장은 영세적이다.

교통망으로는 장연과 수교 사이에 철도 장연선이 있다. 원래는 사리원의 남쪽 가까이에 있는 은파역에서 수교를 거쳐 장연에 이르는 철도가 장연선(지금의 은파선)이었으나 은파에서 은율을 거쳐 서해리와 연결되는 철도를 황해청년선이라 하고, 수교와 장연 사이의 짧은 철도를 장연선이라 부르고 있다.

장연 북쪽의 박석산은 기암괴석이 많은 경승지이고, 진산인 두견산에는 화굴(花窟, 꽃재굴)이 있다. 이 굴은 길이가 260m나 되는 종유굴이다.

태자봉의 남쪽 사면에 있는 학림사(鶴林寺)는 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세웠는데, 이곳에 오층석탑이 있다. 장연향교는 시가의 동쪽에 있는데, 6·25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장연고등중학교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여지도서』
『황해도지』(황해도지편찬위원회, 1970·1981)
『이북5도30년사』(이북5도위원회, 1981)
『한국고고학지도』(한국고고학회, 1984)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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