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광수(廣叟), 호는 옥산(玉山), 열청재(閱淸齋). 인동장씨 화원 집안에서 태어났다. 화원으로 1795년(정조 19)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제작에 김득신(金得臣), 이인문(李寅文)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관직은 수원 감목관(監牧官)을 지냈다. 어해화(魚蟹畵)를 특히 잘 그려 이 분야의 제일인자로 손꼽혔다.
유재건(劉在建)은 장한종이 소년시절부터 숭어, 잉어, 게, 자라 등을 사다가 자세히 그 비늘과 껍질을 살펴보고 묘사하였으며, 매번 그림이 이루어졌을 때 그 박진함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기록하였다.
쏘가리, 붕어, 미꾸라지 등의 민물고기와 소라, 조개류, 자라, 게 등을 즐겨 그렸다. 17세기 김인관(金仁寬)의 어해화풍을 계승하였으며, 소재의 다양화와 사실력의 증진, 배경의 바위와 수지법(樹枝法) 등에서 김홍도(金弘道)의 화풍을 가미하여 조선 후기 어해화의 전통을 확립하였다.
장한종의 정밀한 어해도는 이전의 전통과 완전히 구별되는 것으로, 김려(金鑢)의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정약용(丁若鍾)의 『자산어보(茲山魚譜)』와 같은 서적의 편찬과 시대를 같이 한다. 박물학적 지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조선 후기의 사회적 환경은 새로운 어해도가 시도되는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장한종의 화풍은 아들인 장준량(張駿良)과 조정규(趙廷奎) 등을 통하여 말기 화단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유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어해도」 8폭 병풍과 『어해화첩』을 비롯하여 「송사리」(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이어도(鯉魚圖)」(개인 소장), 「어해도」(개인 소장) 등이 있다. 화원으로서 독특하게 직접 지은 『열청재어수신화(閱淸齋禦睡新話)』라는 재담집을 남기고 있다. 해학적이고 골계적 성격의 이야기 130여 개가 담긴 이 책은 조선후기 사회의 다양한 생활상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