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는 덕산부곡(德山部曲)이었는데, 고려 충선왕 때 경화옹주(敬和翁主)의 향(鄕)이라 하여 재산으로 고치고 현으로 승격시켜 안동부의 속현으로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의 면이 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1906년 봉화군에 편입되어 재산면이 되었다.
덕산이라는 지명은 동으로 일월산(日月山)·장군봉(將軍峰), 남으로 덕산봉(德山峰), 서로는 청량산(淸凉山), 북으로 미림산(美林山) 등이 둘러싸고 있는데 산세가 아름답고 덕이 있다 하여 이 명칭이 나왔다고 한다. 덕산의 덕을 비슷한 의미를 가진 재산으로 바꾼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재산이 예안(禮安)을 사이에 두고 안동과 떨어져 있어 월경처로 존재하였다. 당시에는 태백산맥의 서쪽 사면에 있는 내륙분지로 남쪽의 청량산에는 옛 산성이 있었고 내륙의 교통중심지였다.
예안에서 소천(小川) 계곡을 따라 태백산맥의 유현(楡峴)을 넘으면 오십천(五十川)을 따라 삼척에 이를 수 있었다. 서쪽으로는 영주와 연결되고 동쪽으로는 고초령(高草嶺)을 넘어 동해안의 울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곳에는 재산·소천·수비(首比) 등에 창고가 있었으며, 현동리에는 정조 때 창건되어 고종 때 철폐된 인계서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