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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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에, 광주에서 김일로가 『전남농촌중보』를 모체로 창간한 일간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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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60년에, 광주에서 김일로가 『전남농촌중보』를 모체로 창간한 일간 신문.
내용

9월 26일 김일로(金一鷺)가 창간하였으며, 주필은 서두성(徐斗成), 편집국장은 이교은(李敎銀)으로, 사옥은 광주시 동구 광산동 78이었다.

≪전남농촌중보 全南農村衆報≫를 전신으로 창간한 이 신문은 석간지의 대판(大版) 4면으로 출발하여 1962년부터 격일 8면제로 발행하였다가 1971년부터 지방신문으로는 최초로 매일 8면씩 발행하였다.

1968년 2월 15일 전국지로 등록하고, 1969년 6월 17일부터는 ‘전북판’을 신설하여 전라북도 일원으로까지 취재 및 보급망을 확충하였다. 1972년에는 컬러판 제작을 위해 독일 하이델베르크사의 다색도 오프셋인쇄기를 도입, 2주에 1회씩 컬러판을 제작하였다.

1975년에는 같은 크기의 활자에 자면(字面)을 크게 확대한 새로운 활자체를 개발, 본문활자를 갱신하였다. 사시(社是)로 ‘공평과 중정(中正)의 존중’, ‘지역개발의 참여’, ‘국리민복(나라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의 도모’를 내세운 이 신문은 특히 지역문화의 계승발전과 지역개발에 편집의 역점을 두었다.

남도 유산 발굴을 위한 장기 연재물인 ‘남도의 빛’, ‘백제의 유산’, ‘그 후예들’ 등을 100여 회씩 연재한 뒤 단행본으로 출간하였으며, 호남의 미술을 더듬는 ‘남도화(南道畫)’, ‘남도서예’ 등을 80여 회에 걸쳐 연재하고 색도판 화집으로 출판하였다.

1974년부터는 ‘지역개발대상’을 제정하여 숨은 일꾼과 공로자를 찾아 시상하였다. 또한, ‘명랑거리 조성’, ‘불우환자 돕기’ 등의 캠페인을 벌였으며, 1975년에는 ‘고아장학회’를, 1979년에는 근로장학생제도를 설립하여 불우학생에 대한 향학의 길을 열어 주었다.

1967년에는 ≪전남연감 全南年鑑≫을 발행하였고, 1969년에는 지역사회연구소를 발족시켰다. 한편, 1974년 2월 1일에는 자매지로 ≪포토전매 PHOTO全每≫를, 같은 해 9월 2일에는 ≪전매어린이≫를, 1979년 4월 1일에는 ≪월간전매 月刊全每≫를 창간하였다.

이렇게 지역신문으로서 선구적인 구실을 해오던 이 신문은 1980년 11월 25일 지방신문 통폐합조처에 따라 ≪전남일보 全南日報≫와 통합, 12월 1일부터 ≪광주일보 光州日報≫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81한국신문방송연감』(한국언론연구원, 1981)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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