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개성 출신. 송도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장봉손(張奉孫)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 교장인 니콜스(Nicols) 부인으로부터 정식으로 바이올린과 악전(樂典)을 사사하였다.
21세 때 무용가 조택원(趙澤元)의 소개로 순회공연 극단인 동방예술단(東方藝術團)에 가담,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악사가 되었다.
20대 초반에 개성에서 가요곡 형식의 느린 3박자 노래의 가락을 작곡하였는데, 순회극단의 극작가 겸 배우인 왕평(王平)이 이 가락에다 가사를 붙여, 노래 제목을 「황성(荒城)의 적(跡)」으로 하고 연극단의 소녀배우이던 이애리수(李愛利秀)에게 부르게 하였다.
무대공연에서 인기를 얻은 이 노래는 1932년 빅타레코드사에서 출반, 전수린의 작곡 솜씨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알뜰한 당신」·「나는 열일곱 살」·「외로운 가로등」·「아이고나 요 맹꽁」·「에라 좋구나」·「무정」 등을 계속 발표하였는데, 주로 황금심(黃琴心)과 박단마(朴丹馬)가 취입하였다.
「고요한 장안(長安)」은 「아다나사케(仇情)」라는 곡명으로 일본에서도 크게 유행하였다. 또, 극작가 왕평의 가사로 된 「님 그리워 타는 가슴」을 작곡, 이애리수와 함께 혼성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1942년 다마가와(玉川)로 창씨(創氏), ‘다마가와 위문대’를 조직하여 만주와 일본 북해도 탄광지대까지 가서 한국 출신 노무자들을 위로하다가 8·15광복 후에는 서울에서 악기점을 경영하였다. 1963년 방송극 주제가로 이서구(李瑞求)의 작품 「강화도령」을 작곡하였고, 1970년 한국가요반세기작가동지회의 초대회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