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룡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시대 해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이칭
  • 덕보(德普)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우봉(牛峯)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해주목사
  • 출생 연도1542년(중종 37)
  • 출생지개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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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해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덕보(德普). 개성 출생. 아버지는 처사 전상(田祥)이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강하고 의협심이 있어 불의를 용납하지 아니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송도에는 음사(淫祀: 바르지 못한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가 성행하여 민간에게 피해를 주었는데 처사 김이도(金履道)와 상의하여 송악산의 음사를 불태워서 주민의 의혹을 없앴다.

1564년(명종 19) 생원시와 진사시에 연이어 합격하여 문명을 떨쳤고, 1568년(선조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나가지 아니하고 향리에서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토사(招討使) 이정암(李廷馣)이 연안을 지키면서 격문을 보내 의병을 초모할 때 달려가서 이정암의 막하로 들어갔다. 당시는 구로다(黑田長政)가 거느리는 왜군이 연안을 포위하고 맹렬한 공격을 퍼붓고 있을 때였다.

연안성을 지킨 지 4일째 되던 날 동남풍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조신옥(趙信玉)과 함께 몰래 성문을 빠져나와 왜진에 섶을 가져다가 불을 질렀다. 맹렬한 바람에 화세가 충천하여 적이 혼란에 빠지자 성병이 출격하여 왜병을 대파하였다.

구로다는 이에 겁을 먹고 포위를 풀어서 후퇴하였다. 당시 황해도 전역이 적의 수중에 떨어진 뒤였으나 오직 연안성만은 무사히 보전할 수 있었다. 그 공을 인정받아 해주목사에 올랐다. 난 후 난민을 초모하여 이들을 보살피고 이들이 생활하도록 선정을 베풀었다.

참고문헌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송양기로전(松陽耆舊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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