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전신록』은 1775년 제주도에 표류해 온 명나라 관상 95명에 대하여 기록한 표류기이다. 서문과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현종이 청나라 강희제에게 표해인이 제주도에 도착한 사건을 알린 내용, 2부는 제주목사 이인이 쓴 『표인일기』를 자료로 구성한 「표인문답」으로, 표류인들은 중국 푸젠성 출신으로 명나라 잔존세력이라는 내용, 3부는 황공과 표해인들의 문답, 4부는 서인·노론파의 명나라에 존주의식을 드러낸 내용이다. 이 책은 사건의 구체적 내용과 명청 교체기의 조선의 외교 관계 및 국내 인사들의 인식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편자미상. 1667년(현종 8) 5월 23일 제주도에 표류해 온 명나라 관상(官商) 95명이 그 해 10월 4일 연경(燕京)에 호송될 때까지 그들의 동태와 시말을 집록(輯錄)한 책이다. 1책. 필사본.
서문에는 편자가 이인(李土+寅)이 쓴 『표인일기(漂人日記)』와 황공(黃功)이 쓴 일기 형태의 『문답서(問答書)』를 구해보고, 당시 100명에 가까운 명나라 사람들이 조선 관인들의 경솔한 처사로 사지에 몰리게 된 참담한 사실에 애통한 마음을 금치 못하면서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정통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다음 범례에는 부록에 관한 참고 사항이 간단하게 기술되어 있다. 본문은 모두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는 현종이 청나라 강희제(康熙帝)에게 보내는 3종의 자문(咨文)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표해인이 제주도에 도착한 시말의 보고와 가지고 있던 물품의 명단, 또 그들을 호송한 일, 그리고 그들이 남긴 홍의포(紅衣砲) 2문(門)을 추후 반송한 일 등이다. 제2부는 이 책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당시 제주목사로 있던 이인이 쓴 『표인일기』를 주된 자료로 해 구성한 「표인문답(漂人問答)」이다.
내용은 6월 15일 객관(客館)에서 만난 날부터 9월 4일 그들이 제주를 출발한 날까지의 일문일답이 수록되어 있고, 부록으로 그들이 홍제원에 도착해 조선 조정에 투서한 「표인재홍제원투서(漂人在弘濟院投書)」와 「표인투시(漂人投詩)」가 있다.
「표인문답」에 의하면, 이들은 중국 푸젠성(福建省) 출신으로 청조(淸朝)가 중원을 장악한 뒤 푸젠·광둥(廣東)의 서쪽 지방에 남아 있던 명나라의 잔존 세력이며, 명나라의 관상으로서 일본으로 무역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표류하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무역은 표면적 이유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일본에 있는 한인(漢人)들에게 보낸 편지 「상이야전계(上李爺前啓)」·「상임환관(上林環官)」·「기일본여림지사서(寄日本與林之使書)」 등을 보면 일본에 병사를 청해 함께 중원을 회복하자는 내용이 있다.
또 심문 중에 드러난 사실로 번왕(藩王) 및 일본 국왕에게 보내는 편지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조선의 관료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논의를 한 끝에 9월 26일에 강희제에게 보고를 했으며, 제주목사 이인은 일본으로 되돌려 보내달라는 그들의 요청 등을 참작해 8월 4일 경성에 송환할 것을 철회하라는 요청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집정(執政) 홍명하(洪命夏)는 청나라로부터 받게 될 후환이 두려워 그것을 반대해 결국 9월 4일 경성으로 송환하게 되었다. 다음 끝 부분에 붙어 있는 「표인재홍제원투서」(1667.10.)와 「표인투시」에서는, 그들을 조선의 군민적(軍民籍)에 편입시켜 농사지으며 살게 해달라고 탄원했으나 결국 연경으로 송환되었다.
그리고 뒤에 추밀사(樞密使) 석희박(石希璞)의 말을 빌리면 그들 모두 영고탑(寧古塔) 지방에서 살해되었다고 한다. 제3부는 황공과 표해인들의 문답이다. 황공은 일찍이 효종이 심양에 볼모로 갔을 때 명나라에서 심양으로 붙잡혀온 사람으로, 뒤에 효종과 함께 조선에 온 사람이다.
그는 경성에 송환된 표해인들을 설득해 연경으로 송환하도록 명령을 받고 그들과 문답을 하면서 10월 6일까지 일기체로 기록하였다. 그 대화 속에는 표해인들에 대한 청나라의 수용 태도가 미지수였기 때문에 그들의 초조한 심리 상태가 잘 그려져 있다.
제4부 부록은 대부분 서인·노론파의 명인(名人)들, 즉 송시열(宋時烈)·권격(權格)·민유중(閔維重)·이인·홍명하·이단상(李端相)·유명윤(兪命胤)·홍만형(洪萬衡)·조복양(趙復陽)·김우형(金宇亨)·김수항(金壽恒) 등의 행장·시장(諡狀)·신도비·묘갈·시·서신 등에서 1667년 표해인들에 대한 당시 조정에서의 처리를 보고 각자의 의견을 진술한 내용을 발췌해 실었다.
여기에 실려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표해인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처사에 대해 비분강개했으며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저버렸다고 보고 있어서, 그들의 존주의식(尊周意識)과 대명정통사상(大明正統思想)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미루어 편자는 노론 계통의 인물로서 역시 편자 자신의 대명정통사상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당시 사건의 진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명청 교체기의 외교 관계와 국내 인사들의 인식에 관한 연구에도 필요한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