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백제의 열기현(悅己縣, 또는 豆陵ㆍ尹城ㆍ豆串)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에 열성현(悅城縣)으로 고쳐서 부여군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태조 23)에 정산현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에 공주목의 속현이 되었다가 뒤에 복구하여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 현감을 두었고 1895년(고종 32)에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대면(大面)과 잉면(仍面)을 합쳐 정산면으로 한 다음 청양군에 병합시켰다. 조선시대에 정산현은 홍주ㆍ청양ㆍ공주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 유인(儒人)들이 많이 정착하였다 하여 정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당시에는 금강유역에 강창(江倉)이 있어 잉화달천(仍火達川)과 치성천(致城川) 연안 평지에서 생산된 세곡을 운반하였으며, 왕지진(王之津)을 통하여 부여와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