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貞蕤)는 박제가의 장년 이후에 사용한 호이다. 이는 정조가 박제가의 집에 들러 그 집에 있는 반송(盤松)에 ‘어애송(御愛松)’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데서 유래한 것으로, 세상풍진 속에서도 지조를 견지하려는 지향과 소망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의 내용은 목록에 이어 서(序)·정유시집·정유문집·북학의내편·북학의외편으로 되어 있다. 말미에는 신석호(申奭鎬)의 해제가 있다. 서두에는 박지원(朴趾源)과 중국인 이조원(李調元)과 진전(陳鱣)의 서문이 있어 시문학에서도 가히 국제적 인물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정유각시집≫은 5권으로 되어 있다(제2권 결권), 그의 시는 사계절의 변화와 온갖 소리, 벌레들의 움직임과 산천초목 등 이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되고 있다. 또 시작에 있어서도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시대 흐름을 섭취하여 자연스러운 표현에 힘썼고 자연의 모습을 감각적인 언어로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대표적인 시는 연경의 정비된 시정(市井) 모습과 선진적인 면을 읊은 140여 수의 연경잡절(燕京雜絶)과 유배지인 함경도 수주(愁州 : 지금의 경원)에서 19세기 초 우리의 비참한 지방 실정을 담은 79수의 <수주객사 愁州客詞>, 그리고 그와 교유했던 국내의 동지들 뿐 아니라 연경에서 사귄 중국·안남·몽고·일본 등의 문인·지사들과의 우정을 노래하고, 때로는 추억담·인물단평을 읊은 130수의 회인시(懷人詩) 등이며, 총 1,200수가 수록되었다.
≪정유문집≫ 권1에는 서(序) 16편, 기(記) 6편, 발(跋) 7편, 설(說) 2편, 논(論) 2편, 명(銘) 9편, 잠(箴) 1편, 찬(贊) 4편, 송(頌) 1편, 정문(呈文) 2편, 상량문 1편, 권2에는 부(賦) 1편, 잡저 41편, 권3에는 제문 12편, 묘명(墓銘) 4편, 행장 1편, 전(傳) 5편, 권4에는 서(書)로 국내외의 친구 및 아들과 주고받은 56편의 서신이 수록되어 있다.
문집 중에서 특기할 것은 1786년(정조 10) 정조의 구언(求言)에 응해 올린 <병오소회 丙午所懷>이다. 여기에서는 ≪북학의≫에도 없는 절세의 경륜으로 나라의 가난을 광구하려는 선각적인 명론(名論)이 제시되어 있다. 즉, 구빈(救貧)의 지름길은 해로(海路)로 중국과 통상무역을 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끝으로, ≪북학의≫가 수록되어 있는데, 서두에 자서와 박지원·서명응(徐命膺)의 서(序)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른바 북학파의 비조를 이루는 명저 북학의내편과 북학의외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19세기에 이미 시집을 엮은 천재적인 시인으로서 박제가의 문학사상 및 시의 세계를 구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북학파의 선구자로서 그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문헌이다.
1961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사료총서≫ 제12집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일부 낙질된 채로 여러 도서관 및 개인의 사본으로 전해 오던 5권 5책의 ≪정유각시집 貞蕤詩集≫과 4권 4책으로 된 ≪정유각문집≫ 및 ≪북학의 北學議≫ 2권을 종합하여 인간한 것이다.
당초에는 규장각본을 저본으로 하여 출판을 시작했으나, 그 뒤 규장각본보다 양본(良本)으로 생각되는 임창순(任昌淳) 소장의 ≪정유각시집≫과 이겸로(李謙魯)가 소장하고 있는 ≪북학의≫를 발견하고 이와 대교(對校)하여 간행했는데, 시집에 제2권이 결본으로 되어 있어 활자본에서도 결권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