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서원(西原). 자는 한조(漢朝), 호는 뇌헌(磊軒). 아버지는 정재설(鄭在卨),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이다. 중부(仲父) 정재기(鄭在夔)는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피체되어 옥고로 사거했다.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동 갖말[枝村]에서 정구(鄭逑)의 14대손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중부 밑에서 학문을 시작하여 결혼 후에는 장인인 노상익(盧相益)과 처숙인 노상직(盧相稷)으로부터도 배웠다.
파리장서사건 때는 그 본문(本文)을 지금의 칠곡군에 있는 장석영(張錫英)으로부터 대구의 윤상태(尹相泰)에게 전하는 일을 맡았었다.
일본경찰이 기미를 알아차리고 수배 중이어서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으나 옷솔기 속에 감추어 전달할 수 있었으며, 그 사건으로 인하여 중부가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사거한 후 정종호도 체포되어 6개월의 옥고를 치루었다. 이 후 망국의 시름을 안고 산중에서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나와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성리학을 깊이 파고들었으며, 「이기변(理氣辨)」·「대학정심장존양성찰변(大學正心章存養省察辨)」·「인자도(仁字圖)」·「온고지신론(溫故知新論)」·「종자론(種蔗論)」 등을 비롯한 많은 저작이 있으며, 특히 「격몽소편(擊蒙小編)」은 정종호의 대표작으로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정종호가 죽자 유림장(儒林葬)이 치루어졌고, 선생(先生)으로 불리게 되었다. 저서에는 『뇌헌문집(磊軒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