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극회(制作劇會)는 1949년 10월 제1회 대학극경연대회에 참가했던 각 대학극회 출신의 연극인이 대거 참여한 동인제(同人制) 극단이다. 창립 회원은 고려대학교 출신의 김경옥(金京鈺)·최창봉(崔彰鳳)·최상현(崔相鉉)과 연세대학교 출신의 차범석(車凡錫), 서울대학교 출신의 이두현(李杜鉉)·조동화(趙東華)·허규(許圭), 중앙대학교 출신의 박현숙(朴賢淑), 극단 신협(新協) 출신의 오사량(吳史良), 교사 출신 최명수(崔明洙) 등이었다.
‘현대극 추구와 인간 정신의 자유로운 창의에 따라 극형식을 제작한다’라는 목표를 내걸고 시작한 제작극회는 창립공연으로 1956년 7월 홀워디 홀과 로버트 미들매스 합작·차범석 역·전근영(全槿暎) 연출 「사형수」를 무대에 올렸고, 이어 12월 막스 할베(Max Halbe) 작·오사량 연출 「청춘」을 공연하였다. 이어 1958년 3월에는 차범석 작·오사량 연출 「공상도시」, 7월에는 차범석 작·김경옥 연출 「불모지(不毛地)」, 12월에는 김경옥 작·차범석 연출 「제물(祭物)」을 공연했다. 1959년 5월 오상원(吳尙源) 작·최창봉 연출 「묵살(黙殺)된 사람들」, 10월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작·차범석 연출 「유리동물원」, 1960년 3월 김자림(金玆林) 작·차범석 연출 「돌개바람」, 박현숙 작·오사량 연출 「사랑을 찾아서」, 7월 존 오스본(John Osborne) 작·김경옥 역·최창봉 연출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공연하였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는 제작극회의 공연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1961년 4월에는 차범석 작·허규 연출 「껍질이 깨지는 아픔 없이는」을 4·19 1주년 기념공연으로 국립극장에서 공연하였다. 1961년 이후 2년간 활동이 없었으나, 1963년에 김경옥 작·이원경 연출 「산여인」 으로 재기공연을 가졌다. 이후 다시 안평선(安平善)으로 대표가 바뀌면서 새 단원을 맞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공연활동을 지속하였다.
이 밖에 작품으로는 신명순(申明淳) 작 「도시(都市)의 벽」, 박현숙 작 「너를 어떻게 하랴」, 정하연(鄭夏淵) 작 「마로니에의 길」등의 창작극과 아이리스 머도크(Iris Murdoch) 작 「이탈리안 걸」,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 작「열개의 인디언 인형」등의 번역극이 있다.
주요 경연참가 작품으로는 1979년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정하연 작·이완호(李完浩) 연출 「물새야 물새야」, 1980년 제4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오혜령(吳蕙齡) 작·이완호 연출 「일어나 비추어라」, 1987년 제11회 서울연극제에 「어느 족보가 그 빛을 더하랴」가 있으며, 1978년 제15회 동아연극상에서 「마로니에의 길」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제작극회의 공연은 주로 원각사 등 소극장에서 이루어졌고, 원각사의 취지와 일치하는 점이 많았다. 제작극회의 동인은 새로운 연극에 대한 의욕은 충만했으나 무대 연출이나 제작 경험이 미숙했을 뿐만 아니라 재정 기반도 약했다. 그러나 실험극을 무대에 올리기 어려운 시기에 창작, 연출, 제작을 도맡아 한 이들은 동인제 단체의 실험극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또한 신진작가 차범석과 신진 연출가 허규의 부상, 그리고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통한 저항적인 분위기 조성은 괄목할 만한 성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