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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문헌
1892년 12월경 동학의 지도자 손천민이 지방관리들의 탐학과 횡포를 고발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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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92년 12월경 동학의 지도자 손천민이 지방관리들의 탐학과 횡포를 고발한 문서.
내용

유(儒)·불(佛)·선(仙)과 동학의 관계를 밝히고 지방관리들이 동학교도의 재산을 탈취하는 횡포를 시정할 것을 요망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략 두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먼저 동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공맹(孔孟)의 도를 행하는 사람은 양묵(楊墨)을 가리켜 이단이라고 하나 양묵의 편에서는 공맹을 이단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단이란 당대에 신봉하는 도와 다른 것을 가리킬 뿐 반드시 잘못된 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경신년(庚申年)에 최제우(崔濟愚)가 한울님 말씀을 듣고 도를 깨우쳐 동학(東學)을 창도하였는데, 이는 유불선 삼교를 다 합한 것이다. 지금의 유교는 본래의 유교가 아니고 지금의 불교는 본래의 불교가 아니라 한갓 허명뿐이므로, 동학이 그 지나친 것을 덜고 모자란 것을 더하며, 그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동학을 이단사설이라 핍박함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당시 지방관리의 탐학과 동학교도에 대한 박해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충청감사 조병식이 동학교도들을 잡아 가두게 하는데, 돈을 바친 사람은 무죄방면시키고 가난한 자는 벌을 주어 백성들이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충청도와 전라도의 군수들이 백성들을 들볶아 재물을 빼앗는 것이 각각 수만 냥이라 한다. 그러므로 조정에서는 동학을 막는 것보다 백성들을 어루만져 그들의 민정(民情)을 돌보는 데 더 애를 써야 할 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동학교도들은 스스로 돌아가 각자 그 생업에 전념할 것이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내용의 본 문서가 제출되었던 1892년 12월에는 이미 교조신원(敎祖伸寃)의 명목으로 충청감사와 전라감사에게 청원서를 제출하였다가 거절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3년 2월에는 동학교도 40여명이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엎드려 3일 동안 상소한 이른바 복합상소(伏閤上疏)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나온 본 문서는 교주 최제우의 죄명을 씻고자 동학이 이단사교가 아니라 유교·불교·선교의 장점을 골고루 받아들인 참된 가르침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또한 각지의 탐관오리들의 횡포로 백성들의 생업이 도탄에 빠졌음을 고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참고문헌

『천도교백년략사』 상권(천도교중앙총부, 1981)
『천도교서』(박인호, 천도교중앙총부, 1921)
『천도교창건사』(이돈화, 천도교중앙종리원,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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