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42년에 조직된 창극 극단.
연원 및 변천
1936년 조선성악연구회 산하 창극좌(唱劇座)가 창단되면서 본격적인 창극단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조선창극단(朝鮮唱劇團)은 1942년 9월에 조선성악연구회 직속 창극좌와 또 하나의 창극단인 화랑창극단(花郞唱劇團)이 통합한 것으로, 실제로는 분산되었던 성악연구회의 재결속인 셈이다.
이 극단은 박석기(朴錫紀)·허순구(許舜九)의 지도 아래 최남선(崔南善)·이광수(李光洙)·정노식(鄭魯湜) 등이 극본·고증·가사를 맡았고, 무대미술은 김은호(金殷鎬)·허백련(許百鍊) 등이 도왔으며, 의상은 유자후(柳子厚)가 후원한 최고의 진용이었다.
단원도 성악연구회의 주류가 참가하였다. 이들의 레퍼토리는 전래의 판소리 다섯마당과 「배비장전」·「장화홍련전」·「유충렬전」 등 고대소설 각색극과 각색사극(脚色史劇) 「마의태자」·「황진이」·「백제의 낙화암」·「재봉춘(再逢春)」·「빈부」·「항우(項羽)와 우미인(虞美人)」·「논개」 등 신작 창극도 여러 편 공연하였다. 이 밖에도 「춘향전」·「심청전」·「흥부놀부」·「보은표(報恩瓢)」 등을 공연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 희곡사 연표』(민병욱, 국학자료원, 1994)
- 『창극사연구』(박황, 백녹출판사, 1976)
- 『한국연극사연구』(이두현, 서울대학교출판부,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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