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 사회구조연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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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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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룡(1930~2013)이 조선 초기 사회 구조에 대하여 저술한 학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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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이재룡(1930~2013)이 조선 초기 사회 구조에 대하여 저술한 학술서.
내용

조선 초기 사회 구조를 사회경제적인 기본 문제들을 중심으로 연구한 책이다. 1984년 일조각(一潮閣)에서 간행되었다. 내용은 크게 관직·군역·토지 제도의 3편으로 되어 있다.

제1편에서는 체아직(遞兒職)·토관(土官)·녹봉제(祿俸制)를 중심으로 관직 체계를 구명하려 하였다. 먼저, 체아직은 고려 말 이래 남수(濫授)된 정직(正職) 이외의 여러 녹관(祿官)과 허직화된 서반군직이 세종대에 제도적으로 정비되면서, 대상에 따라 동반·서반·잡직체아직으로 각기 구분, 성립되었음을 밝혔다.

다음으로, 토관직은 원나라로부터의 실지회복, 세종대의 4군·6진 개척 등과 함께 평양·함흥·제주 등 변방 지역의 토착 세력을 회유해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설치하였던 체아직의 일종이었음을 밝혔다.

끝으로, 녹봉은 관리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반대 급부로서, 그 대상에 따라 녹(祿)·봉(俸)·요(料)로 구분, 정비되었으며, 그 재원은 녹전(祿轉)과 군자전(軍資田)의 수입으로 충당되었음을 밝혔다.

제2편에서는 봉족제(奉足制)·수군(水軍)·익군(翼軍)을 중심으로 군역 제도를 해명하려 하였다. 먼저, 봉족제는 고려의 양호제(養戶制)의 유제로서 국역편성의 기초였으며, 군호(軍戶)를 비롯한 법제적인 호는 정정(正丁)과 봉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밝혔다.

다음으로, 수군은 정병(正兵 : 陸守軍)과 함께 양인 병종의 기간을 이루었으나, 다른 군역에 비해 부담이 과중해서 역을 기피, 대립(代立)하는 폐단이 컸고, 결국 양천불명자(良賤不明者)들에 의해 세습되는 천역으로 변질되어갔음을 밝혔다.

끝으로, 평안도·함길도의 익군 조직은 원나라의 익군 체제의 영향을 받아 고려 말에 동북·서북면에 설치되었던 익군 조직을 이은 것으로서, 세종대에 군사와 행정이 일원화된 군익도(軍翼道) 체제로 정비되었음을 밝혔다.

제3편에서는 토지 및 전세제도(田稅制度)의 성격을 해명하려 하였다. 먼저, 과전법 실시과정에서 나타난 농민보호 규정은 국가 재정의 기반인 농민의 토지소유권을 보장하려 한 것이었고, 궁극적으로는 농민에 대한 직접 지배를 추구한 국가의 집권적 성향 및 성리학에 근거한 신진사대부의 이상이 반영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와 아울러 공법(貢法)이라는 새로운 전세 제도의 성립 과정을 농업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면에서 분석하였다.

그 결과 휴한법(休閑法)에 기초한 손실답험법(損實踏驗法)에서 연작법(連作法)에 입각한 공법으로서의 전세 제도의 일대 개혁을 농업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종래의 족단적(族團的)·집단적 토지경영이 소단위경영으로 전환하게 되면서, 전분6등법(田分六等法)·연분9등법(年分九等法)에 의한 국가의 통일적인 전세제도 운영이 가능하게 된 데서 기인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조선 초기 사회구조에 대한 이해에 필수적인 관직·군역·토지 문제 등 주요 부분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실체를 상세히 부각시킴으로써 조선 초기 사회경제사의 연구 수준을 제고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접분야 연구의 진척에도 일정한 공헌을 한 연구서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서평조선초기사회구조연구」(이성무, 『역사학보』 106,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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