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우윤, 동지의금부사,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내용
그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평양으로 몽진하자 왕을 호종하였으나, 왕이 평양을 떠나 의주로 간다는 말을 전해듣고 동료 네 사람과 밀의하여 사초(史草)를 불태우고 그 곳에서 탈출하였다. 환도 후 그 죄과로 인하여 예문관검열직에서 파직당하였다.
그 뒤 1599년 예문관대교에 복직되었고, 1604년 선천군수로 재직시에 평안감사로부터 포상대상자로 상신되었다. 2년 후 성균관사예를 거쳐, 1609년(광해군 1)이이첨(李爾瞻)의 그늘에서 한성부우윤·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장례원행판결사를 지냈으며, 1618년에는 공조참판이 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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