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목판본. 저자 허봉이 1574년(선조 7) 서장관으로서 성절사(聖節使) 박희립(朴希立), 질정관(質正官) 조헌(趙憲)과 함께 명나라 신종(神宗)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다녀오면서 기록한 것이다.
같은 해 5월 11일부터 11월 3일까지 6개월 여간의 일기를 상·중·하 3권과 <과강록 過江錄>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권수는 분량에 의해 나누었으며, 여기에 쓴 것은 서울을 출발해 같은 해 10월 10일 의주로 돌아올 때까지의 일기이다. 그 뒤 의주에서 귀경할 때까지는 따로 <과강록>에 기록하였다.
이 책은 그의 증손 지(墀)가 1707년(숙종 33)에 과강록, 하곡(荷谷)선생 연보, 하곡선생집 목록과 함께 ‘하곡집(荷谷集)’이라는 표제를 붙여 간행한 것이다. 책머리에 유성룡(柳成龍)의 서(序)가 있다.
상권은 서울을 출발해 6월 29일 해주위(海州衛)에 도착할 때까지 연도에서 지방관·사인(士人)·친지들과의 만남, 근방의 경승·민정 등을 기록하였다. 이 밖에 이이(李珥)를 비롯한 우리 나라 학자 및 중국인들과의 토론, 명나라 관헌과의 교섭·동태·예물, 성(城)·지(池)·진(鎭)·보(堡)의 연혁, 이정(里程), 풍속 제도 등도 기록되었다.
중권은 7월 1일부터 8월 30일까지 우가장(牛家莊)에서 산해관(山海關)을 거쳐 북경에 들어가서 명나라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고 북경을 구경한 기록, 연도 및 북경의 풍경·성지·인물 등을 기록하였다.
이외에 명나라 관헌과의 교섭, 양명종사의(陽明從祀議)에 대한 논급, 예궐 과정, 궐내의 견문·정경, 표(表)·자문(咨文)의 제정 절차와 내용,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교섭, 양명학에 대한 토론 등도 기록되었다.
하권은 9월 3일 입궐해 사은(謝恩)한 다음 8일 도문(都門)을 나서서 의주에 이르기까지 돌아올 때의 기록으로이다. 예궐해 사은하는 절차, 궁궐내의 정경, 정문(呈文), 종계변무의 교섭, 당시 명나라의 정치적 상황 등을 기록하였다. 끝에 저자의 조천기후서가 있다.
<과강록>은 10월 10일 강을 건너 11일 의주 동헌에서의 연회, 11월 3일 서울에 도착해 모화관(慕華館)에서 왕의 환영을 받고 근정전(勤政殿)에서 명나라 황제의 칙서를 반포하고 하례를 끝낼 때까지의 간략한 기록으로 조천기에 연속되는 부분이다.
이 책은 당시 조선 사회에서 전통적인 도통사상(道統思想)이 흔들리고 있는 때, 중국 사대부들과 양명학을 배척하는 논변을 통해 도통사상의 정통성을 고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역력히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무렵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참고가 된다.
또한, 당시의 현안 문제였던 종계변무의 교섭에 노력했는데, 이후 여러 차례 주청사를 파견해 1588년에 일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