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시 감정동에 위치한다. 1979년 9월 3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헌(趙憲, 1544~1592)의 본관은 배천(白川), 호는 중봉(重峯)으로,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67년(선조 즉위) 문과에 급제한 후 지방 수령과 언관으로 있으면서 강직한 발언으로 명망이 있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승병과 합세하여 청주를 수복하였다. 곧이어 홍성 · 전주 등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호남 순찰사 권율(權慄)장군과 합세하기로 했으나 서로 어긋나자, 단독으로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적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이조참판에 추증하고 문열(文烈)이란 시호를 내렸다.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648년(인조 26) 왕명으로 우저서원(牛渚書院)을 세웠는데, 이 비는 우저서원 사당인 문열사(文烈祠) 전면 우측 비각에 보존되어 있다. 대리석으로 된 비는 총높이 207㎝, 비 높이 140㎝, 너비 62㎝, 두께 26㎝이다.
비문은 이정구(李廷龜)가 글을 짓고, 김현성(金玄成)이 글씨를 썼다. 비문 끝에 ‘만력사십년오월(萬曆四十年五月)’이란 연기(年記)가 있어 1617년(광해군 9)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