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문집 ()

유교
문헌
1748년, 조선 전기 학자이자 의병장 조헌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이칭
이칭
중봉선생문집(重峰先生文集), 중봉집
문헌/고서
간행 시기
1748년
저자
조헌(趙憲)
권책수
20권 10책
권수제
중봉선생문집(重峰先生文集)
판본
활자본
표제
중봉선생문집(重峰先生文集)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중봉문집』은 1748년 조선 전기 학자이자 의병장 조헌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시·상소·일기·서간·기·전·잡저 등 다양한 문체의 글을 담은 20권 10책의 활자본이다. 송시열, 윤선거 등의 손을 거쳐 간행되었으며, 『항의신편』, 『동환봉사』 등 기존 간행본의 내용을 아우르고 저자의 수고까지 반영하여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되었다. 동서분당기 사림의 입장과 16세기 조선 지식인의 사회 인식을 보여 주는 자료로서, 조헌의 사상과 의병 활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정의
1748년, 조선 전기 학자이자 의병장 조헌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조헌(趙憲: 1544~1592)의 본관은 배천(白川)이며,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 · 도원(陶原) · 후율(後栗)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황(趙璜), 할아버지는 조세우(趙世佑), 아버지는 조응지(趙應祉)이다. 이이(李珥) ·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공조좌랑, 전라도도사, 보은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고 벌인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서지사항

20권 10책의 활자본[운각활자(芸閣活字)]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안방준(安邦俊)이 조헌의 유문(遺文)과 사적을 수집, 정리하여 6권으로 편집하고 1920년경에 유색(柳穡)과 함께 『항의신편(抗義新編)』이라는 제명으로 간행하였다. 하지만 후손가에 소장하고 있던 저자의 수고(手稿)와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체계적인 문집 간행이 요구되었다.

1639년 송시열(宋時烈)이 저자의 아들 조완배(趙完培)의 집에서 이유태(李惟泰) 등과 문집 간행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고, 조광한(趙匡漢)과 함께 유적(遺蹟), 동환봉사(東還封事), 유문(遺文) 등 후손가에서 소장하고 있던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문집의 초본을 완성하였다. 이후 윤선거(尹宣擧)의 교정을 거쳐 민유중(閔維重)이 간행하였다. 그 뒤 1748년 영조의 명에 따라 교서관에서 활자로 중간본이 간행되었다.

기본적인 편집 원칙은 이전의 간행 여부와 관계없이 저자의 저술 및 관련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여 수록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누락된 시문은 물론 이미 간행된 『항의신편』과 『동환봉사』도 함께 수록하였고, 분량도 20권[부록 7권] 10책으로 대폭 늘렸다. 이후 중간본을 대본으로 1934년에 황해도 연안 봉양사(鳳陽祠)의 기광도(奇廣度)를 대표로 15명의 사림이 발의하여 전주의 광문당(光文堂)에서 연활자로 다시 간행하였다.

구성과 내용

권두에 『항의신편』의 서발 4편, 안방준이 『항의신편』을 편찬하면서 이징(李澄)을 시켜 그린 그림 8장 등이 실려 있다. 권12에는 시가 실려 있다. 저작 시기별로 편차하였다. 권38은 『동환봉사』와 『항의신편』에 수록된 상소를 포함하여 저자가 올렸거나 올리려 했던 모든 상소를 시기별로 편차한 것이다. 권4의 말미에는 안방준과 조광한의 발문을 부록하였으며, 권8의 말미에는 김장생(金長生)의 「선우록서(先憂錄序)」, 권필(權韠)의 「제선우록후(題先憂錄後)」, 조익(趙翼)의 「봉사발(封事跋)」 등이 부록으로 포함되어 있다. 권9에는 서간과 잡저, 권10~12에는 「조천일기(朝天日記)」가 실려 있다. 권13은 「북적일기(北謫日記)」, 기(記), 제발(題跋), 축문(祝文), 격문(檄文) 등이 실려 있다.

부록은 모두 7권이다. 권1에는 세덕(世德)과 연보, 권2에는 송시열이 지은 행장이 실려 있다. 권3에는 김집(金集)이 지은 시장(諡狀), 김상헌(金尙憲)이 지은 신도비명, 송시열이 지은 묘표가 실려 있다. 권4에 윤근수(尹根壽)의 일군순의비명(一軍殉義碑銘)과 유사 등이 실려 있고, 권5에는 포전(褒典) · 찬술이 실려 있다. 권6에는 제문과 애도시, 권7에는 조헌을 향사한 사우(祠宇)와 서원(書院)에서 쓰이는 축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는 1590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영남을 유람하며 지은 90여 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영남 기행시에는 경상감사 홍성민(洪聖民) 등 당시의 영남 지방관들, 그리고 정구(鄭逑)와 같은 지역의 주요 인물과 교류한 시가 눈길을 끈다.

「질정관회환후선상팔조소(質正官回還後先上八條疏)」와 「의상십육조소(擬上十六條疏)」는 『동환봉사』에 수록된 상소이다. 이 두 편의 상소는 1574년에 질정관(質正官)이 되어 박희립(朴希立), 허봉(許篈)과 함께 명나라 신종(神宗)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중국에 다녀와서, 그가 본 중국의 문물제도 중에서 조선에서 적용해야 할 것을 정리한 것이다. 「의상소(擬上疏)」는 1582년 보은현감 때 지은 것으로 군정(軍政)과 부역의 폐단에 대한 내용이고, 「변사무겸논학정소(辨師誣兼論學政疏)」는 공주목제독(公州牧提督)으로 부임한 후에 작성한 것으로, 학정(學政)의 폐단을 논하면서 성혼, 이이, 정철(鄭澈)을 지지하는 내용이다.

「진소회잉사직소(陳所懷仍辭職疏)」는 공주목제독을 사임하며 올린 상소로 박순(朴淳)과 정철을 변호하고 정여립(鄭汝立), 이발(李潑), 이길(李佶)을 배척하는 내용으로 당쟁과 관련된 것이다. 「청절왜사소(請絶倭使疏)」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원씨(源氏)를 시해하고 찬립했음을 지적하면서 윤리를 범한 자들과는 통호할 수 없음을 밝힌 글이다. 「청참왜사소(請斬倭使疏)」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신을 보내 가도(假道)를 요청한 것에 대해, 사신의 목을 베고 이 사실을 명나라와 유구국 등에 알려 왜의 망상을 버리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글이다.

「조천일기(朝天日記)」는 질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경험을 적은 것으로 1574년 5월 11일부터 같은 해 9월 14일까지의 일정을 기록한 것이다. 「북적일기(北謫日記)」는 1589년 5월 8일부터 6월 17일까지 길주(吉州) 영동역(嶺東驛)에 유배되는 과정을 기록한 일기이다.

의의 및 평가

조헌의 사상과 학문을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이다. 동서분당(東西分黨) 시기 사림들의 면면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 16세기의 사회상과 사림의 이념적 지향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다수 있다. 또한 의병 관계 자료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논문

이하준, 「중봉 조헌의 학문, 사상과 시 연구」(『새국어교육』 87, 한국국어교육학회, 2011)
김문준, 「중봉 조헌의 의리정신과 무실정신」(『한국사상과 문화』 38, 한국사상문화학회, 2007)
김인규, 「중봉 조헌 개혁사상의 실학적 특성」(『동양철학연구』 41, 동양철학연구회, 2005)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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