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중원 김위 묘 출토 유물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위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이다. 1980년 충북 중원군 살미면에서 김위의 묘소를 이장하던 중 미라화된 시신과 함께 출토되었다. 관복 1점(겹단령), 직령 1점, 철릭 3점, 중치막 5점, 장옷 1점, 바지류 3점, 적삼 1점 등이다. 당시 총 20점이 수습되었으나 이 중 17점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충북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위의 생몰년은 정확하지 않으나 임진왜란 때 현감을 지냈다고 한다. 복식의 형태 등으로 추정해 볼 때 출토 복식들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17세기 초기까지의 것으로 판단된다.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김위(金緯)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개설
김위의 정확한 생몰년은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당시 현감(縣監)을 지냈다고 하며, 복식의 형태나 옷감의 무늬, 족보 등을 추정해 볼 때 출토된 복식들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17세기 초기까지의 것으로 판단된다. 1981년 11월 14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 충북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직령 1점은 명주[紬]로 만든 겹직령이다. 겹단령의 안감으로 만들어진 직령과는 달리 단독으로 입혀진 옷이다. 무의 상부가 위로 향한 상향 삼각 형태이다.
철릭은 명주겹철릭 2점, 명주홑철릭 1점 등 3점이 출토되었다. 이 중 홑철릭은 양쪽 소매가 모두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길이 125∼128㎝, 화장 102∼112.5㎝, 뒤품 60∼62㎝이다. 소매모양은 착수에서 벗어나 광수로 이행하는 과정의 중간 형태이다.
장옷 1점은 지정 당시 ‘명주솜직령포’로 등재되었다. 솜을 넣어 만든 솜누비 장옷이다. 총길이 121㎝, 화장 92㎝이며, 3㎝ 간격으로 누벼져 있다. 특히 소매 끝에는 31㎝ 길이로 소색 고운 세주로 만든 끝동이 달려있는데 길과 달리 10㎝ 너비로 넓게 누벼져 있다.
중치막 5점은 지정 당시에는 ‘창의’로 등재하였으나 그 후 복식사학계의 연구 결과에 따라 길의 좌우에 삼각형 무가 있고 옆선에 트임이 있는 유형의 포들을 중치막으로 수정하였다. 김위의 묘에서는 무명누비중치막 2점, 명주솜중치막 1점, 명주누비중치막 2점 등 총 5점의 중치막이 수습되었다. 전체적으로 길이 122∼129㎝, 화장 100∼105㎝, 뒤품 50∼60㎝이며, 솜을 넣거나 누빔을 하였다. 옆선에는 겨드랑이 30㎝ 아래로 57∼62.5㎝의 트임이 있다. 진동 27㎝, 소매 너비 34.5㎝, 수구 22㎝로 소매는 진동에서부터 서서히 넓어지다가 수구 부분에서 급히 둥글게 좁아지는 모양이다.
적삼은 지정된 것이 1점이다. 삼베로 만든 홑옷으로 깃 모양은 칼깃이며, 겨드랑이에는 삼각형 무가 달려 있고 옆선에 14㎝의 트임이 있다. 뒷길이 70㎝, 화장 73㎝, 품 56㎝이다.
바지류는 3점으로 무명누비바지, 명주누비바지, 무명누비솜바지이다. 이 유물들은 지정할 당시에 ‘누비속곳’으로 명명하였던 것이다. 이는 부인의 의복을 남편의 관에 넣어주는 일종의 장속으로 생각하여 부여된 명칭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시신이 밑 트인 개당고형 바지를 수의로 입고 나온 사례도 있어 이러한 개당고형 바지를 사폭바지가 정착되기 이전 시기에 남성들도 착용하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 2 복식자수편-(문화재청, 2006)
- 「임란전후출토복식(壬亂前後出土服飾) 및 상례(喪禮)」(『충북대학교박물관조사보고』8,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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