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지석 ( )

목차
관련 정보
무령왕 지석 앞면
무령왕 지석 앞면
서예
유물
국가유산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석.
이칭
이칭
지석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무령왕릉 지석(武寧王陵 誌石)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지석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보(1974년 07월 09일 지정)
소재지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석.
내용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2매. 이 지석은 왕과 왕비의 장례 때 지신(地神)에게 묘소로 쓸 땅을 매입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그것을 돌에 새겨넣은 매지권(買地券)으로,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될 때 함께 출토되었다.

왕의 지석은 앞면에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던 해(523년)에 죽어 묘에 안장하며 매지문서(買地文書)를 작성한다는 내용을 6행에 걸쳐 음각하였으며, 뒷면에는 주위에 네모나게 구획선을 치고 간지(干支)와 8괘(八卦)를 배합한 방위를 새겼다.

또 하나의 지석에는 526년 왕비가 죽자 장례를 지내고 529년 왕과 합장한다는 내용을 적고, 뒷 면에는 일만문(一萬文)의 돈으로 토지를 매입하여 무덤을 만든다는 내용을 적었다. 문장은 매우 간결한 한문체이며, 서풍(書風)은 중국 남조풍(南朝風)의 우아한 필치를 보여준다.

이 2매의 지석은 삼국시대의 능에서 발견된 유일한 매지권으로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다른 유물들과 함께 6세기 초 백제와 중국 남조와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무령왕릉발굴조사보고서』(문화재관리국, 1973)
「백제무령왕묘지」(이병도, 『한국고대사회와 그 문화』, 서문당, 1972)
「百濟武寧王陵と出土遺物」(金元龍, 『佛敎藝術』83, 日本 每日新聞社, 1972)
「百濟武寧王妃墓碑陰の冥卷」(瀧川政治郞, 『古代文化』, 日本 古代學協會, 1972)
관련 미디어 (4)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