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 또는 萬努郡ㆍ首知ㆍ新知)이라 하였는데, 신라가 이곳을 차지하자 757년(경덕왕 16)흑양군(黑壤郡, 또는 黃壤郡)이라 칭하고 한산주(漢山州)에 예속시켰다. 고려 초에는 강주(降州)라 칭하다가 뒤에 진주라 칭하였다.
995년(성종 14) 군사적으로 요지라 하여 진주자사(鎭州刺使)를 두었다가 목종 때 이를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 전국을 양계5도로 나눌 때 양광도(楊廣道)청주목(淸州牧)에 속하는 진주현이 되었다. 1259년(고종 46) 충신 임연(林衍)의 고향이라 하여 창의현(彰義縣)이라 개명하였다가, 원종 때에는 지의령군사(知義寧郡事)를 두어 격상시켰다.
그러나 임연이 죽자 다시 진주현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진천현으로 개명한 뒤 약 500년간 행정상 큰 변동이 없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기도 죽산군(竹山郡) 남면의 일부를 편입시켜 대체로 현재와 같은 구역이 되었다.
이 지역은 죽산∼청주간, 음성∼목천간, 안성∼청안간의 도로가 교차되는 곳이 되어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가 되어 장양(長楊) 등 2역과 시태원(時泰院) 등 5개원이 설치되었다. 신라의 김유신(金庾信)이 진천읍 상계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