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내륙수로의 하류지역에 해당하며, 어느 한 특정지역을 지칭하는 지명은 아니었고, 임천(林川) 고다진(古多津)에서 서천포(舒川浦)에 이르는 지역을 통칭한 것이다. 따라서, 금강 하류지역에 위치하였던 나루는 모두 진포를 건너는 곳이었다.
이곳은 고려 말 최무선(崔茂宣)이 화기(火器)를 써서 500여척의 왜구의 배를 무찌른 곳으로 지금의 금강하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천포영(舒川浦營)이 위치하였으며, 수군만호(水軍萬戶)가 한 사람 배치되었던 군사적 요지였다.
조운제도(漕運制度)가 발달하였던 시기에는 조세운반의 주요수로 및 창고가 위치하였던 곳으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으나 조선 말기에는 교역의 중심지로 바뀌기도 하였다. 그 뒤 호남선의 개통과 더불어 발달한 육상교통으로 인하여 이 지역의 내륙수로로서의 운송기능은 상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