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사명자시집』을 저술한 시인.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재주는 뛰어나지만 관직이 한미하여 만년에 만호(萬戶)라는 무관말직(武官末職)에 머물렀던 만큼 세상에 대한 불평의 뜻이 많았다. “살아서는 취향백(醉鄕伯), 죽어서는 수문랑(修文郎)”이라는 그의 시는 시와 술에 경도되었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또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도 이 나라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하소연은 제도에 대한 불만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가정적으로도 불행하여 동생과 두 아들이 죽은 뒤 더욱 시와 술에 탐닉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했다.
천수경(千壽慶)·장혼(張混)·왕태(王太)·최북(崔北) 등과 함께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를 결성하여 비분(悲憤)과 고뇌를 시로 풀었다. 시집으로는 『사명자시집(四名子詩集)』이 전한다. 그의 시는 유재건(柳在建)이 편한 『풍요삼선(風謠三選)』과 일본인 아오야마[靑山好惠]가 편한 『명가시집(名家詩集)』에도 실려 있다.
참고문헌
- 『국문학논고』(구자균, 박영사,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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