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금천교 ( )

목차
관련 정보
창덕궁 금천교
창덕궁 금천교
건축
유적
문화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내에 있는 조선시대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에 설치된 궁궐건물. 다리.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내에 있는 조선시대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에 설치된 궁궐건물. 다리.
개설

금천교는 돈화문 앞을 흐르는 금천(禁川)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돌다리로, 정문인 돈화문과 정전인 인정전의 대문인 진선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2012년 3월 2일에 보물로 지정되었고, 창덕궁관리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내용

창덕궁의 금천교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과 진선문(進善門) 사이 물길 위에 설치되어 있다. 윗부분은 길이 12.9m, 너비 12.5m로, 의장(儀杖)을 갖춘 국왕의 행차 때 노부(鹵簿)의 폭에 맞도록 설정된 규모이다.

창덕궁의 명당수(明堂水), 즉 금천(禁川)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 돈화문 오른쪽까지 와서 궐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이 어구(御溝) 물가에는 화강석 6∼7단을 가지런하게 쌓은 축대를 설치하였다. 여기에 돌다리를 가로질러 조정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였는데, 이 다리가 금천교이다.

경복궁 영제교(永濟橋)나 창경궁 옥천교(玉泉橋)가 정전 남면을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명당수 위에 남북 방향으로 설치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창덕궁과 경희궁 어구의 돌다리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명당수 위에 동서 방향으로 설치되었다. 돌다리의 구조는 하천 바닥의 중앙과 물가에 놓인 기반석을 토대로 홍예를 2개 튼 형식이다.

물가의 축대는 부벽(扶壁) 구실을 하고 있으며, 홍예 위에는 장대석 모양의 멍엣돌을 얹었다. 다리의 상면은 불룩하게 곡면으로 만들고 바닥을 3칸으로 구분하여 칸마다 장대석을 고르게 깔았으며, 다리 가장자리에는 돌난간을 세워 통행자를 보호하도록 하였다.

난간은 머리 부분을 연화보주형(蓮花寶珠形)으로 장식한 법수(法首 : 난간의 모서리 또는 끝머리의 엄지기둥 상부에 장식한 부분)와 그 사이에 세운 판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판석은 하엽동자기둥[荷葉童子柱] 모양의 부조를 중심으로 2칸으로 분절되었고, 칸마다 4잎형 안상을 투각하여 놓았다.

법수 밑에는 멍엣돌 위치에서 돌출된 석재에 짐승머리모양을 환조(丸彫)로 조각하였는데 천록(天祿: 상상의 동물)으로 짐작된다. 한편 홍예 사이의 벽에는 귀면형(鬼面形) 벽사상(辟邪像)이 부조되어 있고, 그 아래쪽의 홍예 기반석 위에는 남쪽에 해태상, 북쪽에 거북이상 등 환조로 만든 동물상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금천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이 다리는 창덕궁이 창건되고 6년 뒤인 1411년(태종 11) 3월 진선문 밖 어구에 가설되었는데, 그 후 숱한 화재와 전란에도 불구하고 창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창덕궁』(장순용, 대원사, 1990)
『한국의 고궁건축』(신영훈 외, 열화당, 1988)
문화재청(www.cha.go.kr)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