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판.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문예 동인지이다. 1919년 2월에 창간되어 1921년 5월 통권 제9호로 종간되었다. 이 동인지를 통하여 시 70여 편, 소설 19편, 희곡 4편, 평론 16편, 번역시 49편이 발표되었다.
창간 동인은 김동인(金東仁)·주요한(朱耀翰)·전영택(田榮澤)·김환(金煥)·최승만(崔承萬) 등 5인이다. 종간까지는 창간 동인 이외 이광수(李光洙 : 제2호부터), 이일(李一)·박석윤(朴錫胤 : 제3호부터), 김명순(金明淳 : 제7호부터), 오천석(吳天錫 : 제7호부터), 김관호(金觀鎬)·김억(金億)·김찬영(金瓚永 : 제8호부터), 임장화(林長和 : 제9호부터) 등 13인이다.
편집·인쇄 및 발행은 창간호부터 제7호까지는 동경(東京)에서, 제8호는 편집은 평양, 인쇄·발행은 서울, 제9호는 모두 서울에서 하였다. 중요 수록 작품으로는 소설 분야에서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제2호)·「마음이 옅은 자여」(제3호)·「배따라기」(제9호), 전영택의 「천치(天痴)? 천재(天才)?」 등 단편소설과 주요한의 「불놀이」(창간호)·「별 밑에 혼자서」(제9호) 등이다.
『창조』는 뒤이어 나오는 『폐허(廢墟)』·『백조(白潮)』 등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주춧돌과 같은 구실을 담당하였다. 특히, 신문학(新文學)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앞에 놓고 방황과 모색을 계속하던 당시의 문단에 「불놀이」·「약한 자의 슬픔」 같은 내용으로나 형식으로나 어느 정도 완성된 작품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광수·최남선(崔南善)의 계몽적 목적문학을 반대하고 문학을 ‘도학선생(道學先生)의 대언(代言)’이나 ‘할일업슨 자(者)의 소일(消日) 거리’(창간호-남은말)로 보는 데 불복한다고 선언하면서 출발하였다.
또한, 그 핵심 동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동인에 의하여 근대적 소설 문체의 확립이 이루어졌고, 주요한에 의하여 자유시의 형태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는 점도 아울러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