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3책. 활자본. 영조의 명으로 찬술한 것으로 1755년에 완성해 광주부(廣州府)에서 개주갑인자(改鑄甲寅字)로 인쇄, 간행하였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721년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된 이후 1755년 나주벽서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여러 차례 역모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영조는 그 원인이 세제 책봉을 둘러싼 분규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세제 책봉이 정당한 처사였음을 밝혀 그 경위를 후세에 전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편찬하였다.
편찬 책임자는 영중추부사 김재로(金在魯), 영의정 이천보(李天輔) 등이다. 서두에 영조의 비답(批答 : 질의에 대한 답변)을 판각한 수서차비(手書箚批 : 손수 쓴 상소문이나 비답)와 유음(諭音 : 신하가 아뢴 질문에 왕이 답변함)인 어제유찬수제신(御製諭纂修諸臣) · 윤음(綸音) · 진천의소감차자(進闡義昭鑑箚子) · 진천의소감전(進闡義昭鑑箋) · 범례 등이 있다.
소론 · 남인의 제거 사건에 대한 영조의 태도와 언급은 전후 연교(筵敎 : 경연이나 서연에서의 강론)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서 요점만을 뽑아 기록하고, 사건 자체의 기록은 소계(疏啓 : 상소와 계문) · 연주(筵奏 : 경연에서의 품주한 내용) · 국안(鞫案 : 죄인을 신문한 사건 기록서)에서 초록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평론은 사실 기사 뒤에 기록하고, 중요 사건은 월 · 일 간지를 기록하였다.
권1에는 신임사화의 전말이 기록되어 있다. 1721년 연잉군(延礽君 : 뒤의 영조)의 세제 책봉과 이어 세제의 대리청정을 둘러싼 노론 · 소론간의 당쟁의 격화, 노론의 몰락 및 소론의 득세 과정, 박상검(朴尙儉) 등의 세제 모해 사건과 1722년 목호룡(睦虎龍)의 고변(告變)으로 노론 4대신이 사사되는 임인옥(壬寅獄)까지의 사실을 수록하였다.
권2에는 1724년 경종이 죽고 영조가 즉위해 김일경(金一鏡) · 목호룡 등이 처형되고 소론 정권이 실각하는 과정이 기술되어 있다.
권3에는 정미환국으로 노론 정권이 실각하고 소론이 정권을 잡는 과정과 1728년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의 전말이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또한 1730년 종실 이해(李垓) · 이기(李圻) 및 나홍언(羅弘彦)의 역모 사건과 1748년 권집(權집) 등이 종실 여천군(驪川君)을 옹립하려다가 발각되어 처형된 사건 등이 기술되어 있다.
권4에는 1755년 나주벽서사건으로 윤지(尹志) 이하 많은 소론과 남인의 인사가 연루되어 처형된 사실이 기술되어 있다. 벽서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토멸령(討滅令)이 전개되고,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처벌 기록을 수록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큰 충격을 받은 영조는 세제 책봉에 반대한 소론의 조태구(趙泰耉) · 유봉휘(柳鳳輝) 등 이미 죽은 사람에게도 역률(逆律 : 반역에 대한 죄율)을 소급해 다스리고, 대리청정을 반대한 이광좌(李光佐) 등에게도 관직을 추탈해 세제 책봉이 정당한 처사였음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왕권에 도전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종친 · 측근 신하를 막론하고 극형에 처한다는 것을 명시하였다. 말미에는 남유용(南有容)의 발문(跋文)과 김재로 이하 봉교(奉敎 : 왕의 교시를 받듬.) 등 편찬에 참여한 사람의 명단을 실었다.
이 책은 세제 책봉 때부터 왕위 계승의 취약성을 의식한 영조가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천명해 왕권 강화를 도모하고자 편찬한 것이었다. 아울러 왕위 계승을 둘러싼 노론과 소론간의 당쟁이 충역의리론(忠逆義理論)적인 성격을 가지며 발전한 당쟁의 소산물이기도 했다.
따라서, 신임사화를 비롯한 노론과 소론간의 당쟁의 양상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며, 특히 영조의 탕평책의 성립과 전개 과정을 연구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단, 노론의 입장에서 편찬했기 때문에 소론의 사정이 무시된 사료적 한계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