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기. 1605년(선조 38) 건립되었으며, 비의 높이는 199㎝이고, 비신의 높이는 149㎝, 너비는 79㎝, 두께는 21㎝이며, 비머리의 높이는 50㎝, 너비는 108㎝, 폭은 67㎝이다.
비문은 한준겸(韓浚謙)이 지었는데, 그 내용은 청주한씨 시조 한란(韓蘭)을 비롯하여 그 후손의 내력을 적고 또 유기(遺基)를 찾았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형인 한백겸(韓百謙)은 청주목사(淸州牧使)로 와서 종인(宗人)을 방문하여 전설을 수집하였고, 무농정(務農停)의 고사(故事)와 방정리(方井里)가 한수(韓脩)의 『유항집(柳巷集)』에 의거하여 오랜 옛터임을 입증하였고, 유기를 찾아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으며, 밭 한 필지를 사들여 계속 제수(祭需)로 마련케 하였다. 매년 봄에 단상(壇上)에서 제사하도록 기율을 정하고, 이를 영구히 전하기 위하여 비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 비석은 밭에 서있는데, 비문이 많이 훼손되어 약 300여자를 판독할 수 있고, 자경(字經)은 1.5㎝이며 앞면 23행임을 알 수 있고, 옆면과 뒷면은 완전히 마멸되었다. 비좌(碑座)는 흙속에 매몰되고 비신은 비좌와 시멘트로 고정시켰으나 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졌다.
이 비의 이름은 ‘청주한씨유기서사비(淸州韓氏遺基敍事碑)’ 혹은 ‘비단(碑壇)’ 등으로 불리나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제단사적비(祭壇事蹟碑)의 성격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