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은 지정 당시 청풍 석조여래입상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청풍문화재단지 안의 보호각에 봉안되어 있다. 높이 약 3.5m에 달하는 대형의 석불로, 충주댐 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 읍리에서 1985년 현재의 위치로 이운하였다고 전해지며, 이 때에 일부 보수가 진행되었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의 대좌는 불상으로부터 약 3m 떨어진 곳에 별도로 방치되어 있다. 지금은 시멘트로 다져 만든 기단 위에 서 있다.
머리 위에는 육계(肉髻)가 솟아 있고 머리카락은 소발(素髮)이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운 원형의 자비상으로서 후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귀, 가늘면서도 두툼한 눈, 넓적한 코, 뚜렷한 인중(人中) 등은 자비로운 부처의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목은 밭은 편이며, 목 아래는 넓게 삼도(三道)가 그어져 형식화되었다.
왼손은 손바닥을 보이고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고 있는 여원인(與願印)·시무외인(施無畏印)으로 보이는데, 왼손의 경우 약지와 새끼 손가락을 구부린 모습으로 변형하였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쪽 어깨에 걸쳐 의습(衣褶: 옷주름)이 무겁게 처리되었다. 옷자락은 다시 시무외인·여원인을 결(結)한 양손에 걸쳐 발목 아래까지 무겁게 흘러내리고 있다.
노출된 가슴 사이로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 부분으로 비스듬히 승각기가 표현되었다. 허리께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나타나 있다. 그 아래로는 U자형 평행의 옷주름이 겹겹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 모습이 비교적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의습은 두껍게 처리되어 신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대좌는 8각의 연화좌로서 8각의 각 면에 하나, 각 합각(合角)에 하나씩 모두 16엽(葉)의 연꽃이 새겨져 있고 그 위로 평면 원형의 굄을 둘렀다. 또 홑꽃잎과 겹꽃잎을 교차시킨 상부 뒤쪽에는 불상을 끼웠던 구멍이 나 있고, 앞에는 불상의 양발과 군의 자락이 양각되어 있다. 대좌 위에 불족(佛足)을 조각하는 수법은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1963년 지정)에서도 보이는 수법이다. 대좌는 8각 양식이나 연판의 장식 수법으로 보아 불상과 같은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석조불입상은 전반적으로 볼 때 당당한 어깨, 강건한 신체 표현 등 퍽 양감 있는 느낌을 주고 있어 신라 말기 불상의 힘을 느끼게 하고 있다. 하지만 형식화된 일부의 표현, 즉 목의 삼도 표현이라든지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과 당당하면서도 괴체감을 면하지 못한 신체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