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7.8㎝, 입지름 9.5㎝, 밑지름 11.8㎝.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안쪽으로 약간 들어간 아가리 부분과 양감 있게 벌어진 어깨로 이어지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좁아지며 끝에서 다시 벌어지는 전형적인 초기 항아리 모습이다.
아가리 부분과 어깨의 경계 지점에서부터 몸체 위쪽에 걸쳐 C자 모양의 귀가 양쪽에 달리고 이 귀에 다시 작고 둥근 고리가 끼어 있다. 이로 보아 이 항아리가 청동 제기를 본떠 만들어진 것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문양은 종속문(從屬文)으로 어깨에 철화뇌문대(鐵畵雷文帶)가 있고, 밑동에는 연판문(蓮瓣文)이 변형된 거치문대(鋸齒文帶)가 역시 철화안료로 그려져 있다. 몸체는 중앙의 철화선 두 줄로 양분되었는데, 그 윗면에는 암회색(暗灰色)의 청화안료로 여섯 개의 도식화된 삼산문(三山文)을 그려 주문양(主文樣)으로 삼았다. 고리가 달린 양쪽 귀에는 철화안료로 유기(鍮器)의 사슬을 흉내낸 동그라미무늬를 그려놓았다. 유약(釉藥)은 푸른 기가 감도는 초기 백자유로 빙렬(氷裂)이 없고, 얇고 고르게 입혀져 있으며, 안다리굽의 바닥에는 모래받침 흔적이 남아 있다.
이 항아리는 종묘(宗廟)의 제례(祭禮) 때 사용된 ‘산뢰(山罍)’라는 제기로 『세종실록』, 『국조오례의』,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에도 이와 같은 모양의 산뢰 그림이 나와 있다. 특히, 1474년에 간행된 『국조오례의서례』에 실린 문양과 비슷하여, 이 제기가 15세기 후반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자 산뢰로서 그 가치가 높으며,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경 경기도 광주 번천리요(樊川里窯) 등의 가마에서 제작된 최상급 백자로서, 특이한 용도와 더불어 청화와 철화를 함께 사용한 귀중한 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