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의 백자 제기(祭器).
개설
내용
문양은 종속문(從屬文)으로 어깨에 철화뇌문대(鐵畵雷文帶)가 있고, 밑동에는 연판문(蓮瓣文)이 변형된 거치문대(鋸齒文帶)가 역시 철화안료로 그려져 있다. 몸체는 중앙의 철화선 두 줄로 양분되었는데, 그 윗면에는 암회색(暗灰色)의 청화안료로 여섯 개의 도식화된 삼산문(三山文)을 그려 주문양(主文樣)으로 삼았다. 고리가 달린 양쪽 귀에는 철화안료로 유기(鍮器)의 사슬을 흉내낸 동그라미무늬를 그려놓았다. 유약(釉藥)은 푸른 기가 감도는 초기 백자유로 빙렬(氷裂)이 없고, 얇고 고르게 입혀져 있으며, 안다리굽의 바닥에는 모래받침 흔적이 남아 있다.
이 항아리는 종묘(宗廟)의 제례(祭禮) 때 사용된 ‘산뢰(山罍)’라는 제기로 『세종실록』, 『국조오례의』,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에도 이와 같은 모양의 산뢰 그림이 나와 있다. 특히, 1474년에 간행된 『국조오례의서례』에 실린 문양과 비슷하여, 이 제기가 15세기 후반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국보』8 백자·분청사기(정양모 편, 예경산업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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