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판, 48면. 1956년 청구출판사에서 발간하였다. 「초토(焦土)의 시(詩) 1」에서 「초토의 시 15」까지 연작시로 씌어졌다.
『초토의 시』는 작자의 존재에 대한 기독교적 윤리의식과 6·25를 통해 겪게 된 민족의 비극과 그 고뇌를 세계사적, 전인류적 문제로 인식하여 드러내준 시집이다.
그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체험공간을 생명부재의, 세계 역사의 초토로 파악하여 그 비극적 참상을 고발하고 구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 시집에서 그는 “제 먹탕에 깜장칠한” 검둥이 아이와 그 어머니, 즉 흑백의 모자상을 통해 황폐한 조국 현실의 생존현장을 고발한다.
한국 여인이 낳은 검둥이 아이는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과 그들의 경제 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지시하고 명령하는 이데올로기에 목숨과 구원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당시 우리 민족 현실과 그 속에서 태어난 한국의 민족주의나 삶을 의미한다.
한국 여인이 낳은 검둥이 아이의 운명이 기구한 것과 마찬가지로 외국의 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장래 역시 기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당시 우리 역사와 현실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다.
구상의 시는 문학사적으로 자연 서정의 리리시즘(lyricism, 서정성), 해외문학파류의 모더니즘 및 르네상스적 인본주의와 유치환(柳致環)·서정주(徐廷柱)류의 생명의식을 거부하는 곳에 위치한다고 평가된다.
『초토의 시』는 그러한 구상 시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이라고 본다. 특히, 전쟁을 소재로 한 많은 시들이 반공 이데올로기로 점철되어 있거나 허무적 감상에 그친 것에 비해, 그의 『초토의 시』는 민족의 비극을 나름의 역사의식을 가지고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대척적인 위치에 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