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싸리골의 신화」·「물보라」·「혈맥」 등에 출연한 배우.
내용
영화계에 들어선 것은 1949년이규환(李圭煥) 감독의 「돌아온 어머니」에 출연하면서부터이며, 그 뒤 연극과 영화에서 성격배우로 크게 활약하였다. 1949년「범선 천우호(帆船 天佑號)」와 1952년「통곡(痛哭)」 등 신예술무대인 신극계열에 치중하다가 1955년김기영(金綺泳) 감독의 「죽음의 상자」를 계기로 영화계에서 전적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1957년 유현목(兪賢穆) 감독의「잃어버린 청춘」에서 크게 인정을 받아 그 당시 국산영화의 대부분에 출연할 만큼 바쁜 배우가 되었고, 생애에 700여 편에 이르는 영화에 출연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자유결혼」(1958)·「돈」(1958)·「인생 차압」(1958)·「오 내고향」(1959)·「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1959)·「흙」(1960)·「어부들」(1961)·「혈맥」(1963)·「상속자」(1965)·「족보」(1978)·「심봤다」(1979)·「짝코」(1980) 등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이만희(李晩熙) 감독의 「싸리골의 신화」(1967)와 김수용(金洙容) 감독의 「물보라」(1980)가 있다.
주연보다는 조연에서 중후한 기량을 발휘한 그는 영화 「인생차압」으로 1958년 제1회 부일영화상 조연상을 수상하였고, 그 뒤 다수의 대종상과, 1963년「혈맥」으로 청룡상, 1967년「싸리골의 신화」로 제4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연기대상을 수상하였다.
1968년 이후 고혈압으로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1977년 유현목 감독의 「문」을 계기로 재기하였지만 건강 악화로 1981년부터는 연기생활이 어려워졌다.
참고문헌
- 『한국영화』(우은순, 1986)
- 「인물영화사-최남현 편-」(김종원, 『일간스포츠』, 1981.7.8.)
- 『영화잡지』(영화잡지사, 1968.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