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가야향(加也鄕)이었으나 1284년(충렬왕 10) 이곳 출신인 김인궤(金仁軌)의 공으로 향을 현으로 승격할 때 춘양으로 고쳐 안동부(安東府)의 관할 내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지속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봉화군으로 편입되어 춘양면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이 예안을 사이에 두고 안동으로부터 북쪽으로 120리 떨어져 있어 위치상 월경지(越境地)가 되었다.
춘양은 만석봉(萬石峯) 아래 들판이 넓으면서도 양지바르고 항상 봄볕처럼 따뜻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이 지역에는 태백산의 서사면 계곡으로 도미천(道美川)이 흐르고 있었으며, 북쪽으로 소백산맥의 사치(沙峙)를 넘어 정선ㆍ영월에 이르고, 동쪽으로 파탄암(破呑巖) 고개를 넘어 소천(小川) 계곡을 따라 황지에 이를 수 있었다.
또한, 서쪽으로 봉화, 남쪽으로 예안에 이어지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이곳은 춘양창(春陽倉)이 있었고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가 있던 각화사(覺華寺)의 입구라는 점에서 중요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