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적평야 ()

만경평야
만경평야
자연지리
개념
하류에 하천이 운반 퇴적하는 토사가 쌓여 이루어진 평야.
정의
하류에 하천이 운반 퇴적하는 토사가 쌓여 이루어진 평야.
개설

만경·김제·김해·평택·김포 등의 평야가 이에 해당한다.

연원 및 변천

이러한 평야는 후빙기 해면상승(後氷期 海面上昇) 이후 현재의 해면을 기준으로 형성되어 해발고도가 10m 내외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낮다.

내용

평야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들’ 또는 ‘벌’이다. 큰 강 하류 지역에서 들 또는 벌이란 충적지(沖積地)를 가리키는 것이다. 충적평야에서 가장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은 범람원(汎濫原, flood plain)이다. 범람원은 홍수 시에 하천이 범람하는 저습지를 말하며, 범람원 상에는 자연제방과 배후습지와 같은 지형이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수 시에 물이 하도를 흘러넘치게 되면 유속이 격감하여, 부유하중으로 운반되던 토사 중에서 모래와 실트 등이 하도 가까이에 퇴적되면서 하천 양안에 약간 높은 지형을 만드는 데 이를 자연제방이라 하며, 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은 토사의 유입이 적고 고도가 낮아 특히 낮은 곳은 배후습지, 즉 늪을 형성하게 된다.

현황

충적평야는 지면이 극히 평평하여 거의 전부 논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홍수 시에는 침수(浸水)를 면하지 못한다. 충적지는 주변의 구릉지(丘陵地)와는 지형 또는 토질이나 토지 이용이 판이하다. 구릉지는 토양이 기반암의 풍화토로 되어 있고, 논·밭·과수원·목장 등 다양하게 이용되며, 임야(林野)로 남아 있는 곳도 많다. 충적지 주변의 구릉지는 기복이 아주 작은 경우에도 삼림으로 덮여 있으면 야산(野山)이라고 불리운다.

우리나라의 넓은 평야는 두 유형으로 크게 나뉜다. 하나는 바다에 면한 평야로서 김제·만경·예당·평택 등의 평야가 이에 속하는데, 지형은 하천 연안의 범람원과 간석지를 농경지로 개발한 간척지로 이루어졌다. 이들 평야는 간척에 의해 지속적으로 넓혀져 왔다.

다른 하나는 바다에 면하지 않은 평야로서 한강 하류의 김포·일산 평야, 낙동강 하류의 대산·밀양 평야, 금강 하류의 구룡·논산 평야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 평야는 범람원으로만 이루어졌다. 평야는 동해로 유입하는 하천 하류에도 발달되어 있지만 규모가 작으며, 바다 쪽 전면에 해안사구가 발달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대하천 하류의 넓은 평야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근대적인 수리시설이 갖추어지기 이전에는 농토로 이용되는 경우에도 수해와 가뭄이 심해서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낙동강 삼각주로 형성된 김해평야는 거의 전체가 갈대숲으로 덮여 있던 저습지였다. 충적평야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20∼1934년간에 시행된 일제의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이 착수되면서부터였다.

일제는 넓은 저습지를 대상으로 하는 수리조합(水利組合)을 설립하고 지리적인 조건에 따라 관개시설로서 대규모의 저수지나 양수장을 설치하는 한편 수해에 대비하기 위해 하천변에 제방을 튼튼하게 쌓아 나갔다.

만경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22년에 건설한 고산천의 대아저수지(大雅貯水池), 김제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28년에 섬진강 상류에 건설한 운암제(雲岩堤)는 대규모 저수지의 대표적인 예이다.

운암제는 유역변경에 의해 섬진강 물을 동진강 유역으로 보내는 저수지로 축조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그리고 한강 하류의 김포평야, 낙동강 하류의 김해평야 등에는 강물을 농업용수로 퍼 올리는 양수장이 설치되었다.

충적평야의 수리시설은 1970년대 이후 대단위농업종합개발계획(大單位農業綜合開發計劃)의 추진으로 또 한 차례 크게 확충되었다. 아산·삽교 등의 방조제와 영산강·금강 등의 하구둑은 농업용수의 개발을 1차적인 목적으로 하여 건설된 것이며, 이로 인해 많은 수리불안전답이 수리안전답으로 개량되었다.

영산강 유역의 장성·담양·광주·나주 등의 댐도 순수 관개용댐으로 건설된 대규모 수리시설이다. 충적평야에서는 배수시설도 중요한 수리시설이어서 이것 또한 대폭 확충되었다. 그러나 집중호우로 큰 홍수가 발생할 때는 침수를 면하지 못한다. 넓은 충적평야에서는 가뭄보다 수해가 훨씬 위협적이다.

우리나라처럼 인구가 조밀한 지역에서는 충적평야 지역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물을 배수시킴으로서 비옥한 농토로 전환되었고, 도시 지역에서는 시가지로 활용하고 있거나 공업용지로 개발되었다.

참고문헌

『지형학(地形學)』(권혁재, 2001)
「한강하류(漢江下流)의 충적지형(沖積地形)」(권혁재, 『사대논집(師大論集) 9』,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1984)
「하천지형(河川地形)」(손명원, 『한국(韓國)의 자연지리(自然地理)』, 서울대출판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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