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7월부터 1953년 2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한국전쟁을 제재로 해서 비극에서 빚어지는 배신과 인정의 급변하는 양상을 비판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한국전쟁 때 남하하지 못한 한미무역회사 사장 ‘김학수’ 영감과 그의 비서요 애첩인 ‘강순제’, 그리고 같은 회사의 젊은 과장인 ‘신영식’ 등의 상호 이질적인 세 인물은 숨막히는 피난생활을 같이 하게 된다. 허영에 들뜬 ‘강순제’를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에서 영식이에 대한 순제의 유혹은 영식의 이전 약혼자인 ‘명신’의 돌연한 등장으로 인해 다시금 영식이를 중심으로 한 복잡 미묘한 애정관계가 벌어진다.
이 소설은 강순제를 주인공으로 세속적인 애정관계를 설파(說破)한 인상을 주지만 실상은 강렬한 반공의식과 따뜻한 휴머니즘이 그 주제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김학수 영감이 애정이나 인정보다 물욕이 더 강력한 인간형임을 용이하게 추정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집어지게 되자 제각기 제 생명과 가족의 안위만 생각하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존질서의 파괴와 잔학무도한 공산주의자의 포악성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인정의 아름다움을 선명히 부각시켰다.
이 작품의 사건과 인물의 행동처리도 한국전쟁으로부터 9·28을 거쳐 1·4후퇴라는 전 민족의 비극의 현실 속에서 작중 인물들은 모두가 전쟁의 처참한 현실에서 완전히 제약받은 생생한 인간들로 재현되고 있다.
이 작품의 끝 구절 중에서 명신이의 운명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영식이의 어머니가 영식이의 약혼자인 명신이와 영식이의 애인 순제와의 대비적인 비교에서 명신에 대한 적극적인 호의를 갖게 되는 것은 앞으로 명신이 최후 승리자가 됨을 암시해 주는 구절이다. 이와 같은 무해결(無解決)과 무결론(無結論)이 바로 염상섭 소설의 특징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