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060년(문종 14)에 건립되었다. 현재 비신과 귀부(龜趺)·이수(螭首)를 해체해놓았다.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신에 양측면으로 상하로 길게 쌍룡을 새겨놓았는데, 중단에서 부러져 쓰러져 있으며 좌상부가 결실되었다. 그 밖에 심한 파손은 없고, 글자는 선명한 편이다.
김현(金顯)이 짓고 민상제(閔賞濟)가 쓰고 전액도 하였으며 각자는 배가성(裵可成)·이맹(李孟) 등이 하였다. 자경 2㎝의 해서이며 전액의 자경은 9㎝이다.
비문에 의하면, 국사의 이름은 정현(鼎賢), 속성은 이씨이고 10세에 광교사(光敎寺)에서 충회(忠會)에게 구법하였으며 17세에 영통사(靈通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28세에 칙명에 의하여 대사가 되었으며 41세에 중대사(重大師), 60세가 넘어서는 승통(僧統)이 되었다. 그리고 1046년에 자수승가리일령(紫繡僧伽梨一領)과 금첩법의일령(錦貼法衣一領)이 하사되었고, 1054년 세수 83세, 승랍 74세로 입멸하였다는 등 그의 행적을 적었고, 후미에는 대사를 기리는 명문이 있다.
글씨는 구양순법(歐陽詢法)의 해서로서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을 방불하게 하는 주경(遒勁 : 붓의 힘이 굳셈)한 필력이며, 엄정한 결구의 것으로 금석기가 넘친다. 고려 초기·중기의 뛰어난 풍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글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