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제목은 『The Korean Pacific Times』이다. 태평양시사는 1918년 11월 28일 박용만(朴容萬)이 호놀룰루에서 창간하한 국문판 주간신문이다. 이 신문은 처음에는 등사판으로 제작하였으나 1920년 12월 4일부터 인터타이프(intertype) 식자기계를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역대주필은 박용만(朴容萬)·조용하·함잠여·이상호·황인환이었다. 이 신문은 당시 독립운동의 방법에 있어 이승만과 대립했던 박용만이 이승만의 『태평양잡지』, 그 뒤의 『태평양주보(太平洋週報)』에 대항하기 위하여 발간하였다.
본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박용만은 조국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하여 1919년 3월 3일 대조선독립단(大朝鮮獨立團)을 창단하였고 이 신문을 그 단체의 정식기관지로 삼았다.
1921년 7월에는 임시정부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하와이에 돌아가서 동지회(同志會)라는 단체를 조직할 당시 태평양시사가 상해한인 적십자회의 편지를 바탕으로 ‘이박사가 도망하여 나왔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였다. 이 기사 때문에 한인부인구제회 회원 등 이승만을 지지하던 세력에 의하여 신문사가 습격을 당하여 인쇄기계가 파괴되고 5명이 상해를 입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이 신문은 1926년 3월 15일 종간할 때까지 7년 4개월 동안 총 301호를 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