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4년(태조 17)에 이곳에 진(鎭)을 설치하여 성을 쌓아 진장(鎭將)을 주둔시켰다가 그 뒤 현령으로 승격시켰다. 1256년(고종 43)에 현령을 폐하고 안인진장(安仁鎭將)이 함께 다스리게 하였다. 1269년(원종 10)덕주(德州)의 관할로 하였다가, 1278년(충렬왕 4)에 함종현(咸從縣)에 예속시켰다.
1393년(태조 2)에 함종현의 임내(任內)인 통해를 영유현(永柔縣)으로 이속시켰으며, 영유 서북 30리 지점의 해안지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부근에는 고읍(古邑)인 유원(柔遠)ㆍ영원(寧遠) 등의 옛 성(城)이 있었고, 와룡산(臥龍山)의 소산봉수(所山烽燧)는 숙천(肅川)과 평양, 증산(甑山) 등의 해안봉수와 이어졌다.
이 지역은 고려시대에 거란ㆍ몽고ㆍ왜구 등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어서 조선시대에 이곳의 여러 현(縣)을 통합하여, 치소(治所)가 내륙에 있는 영유와 합친 것이다. 지금의 서해면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