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역도 ()

팔역도
팔역도
인문지리
문헌
1640년~1644년, 당시의 영토 의식과 조선의 지리정보를 반영하여 제작한 필사본 지도.
문헌/고서
편찬 시기
1640년~1644년
판본
채색 필사본
표제
팔역도(八域圖)
소장처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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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팔역도」는 1640년~1644년 당시의 영토 의식과 조선의 지리정보를 반영하여 제작한 필사본 지도이다. 전라도 능주목과 경상도 칠곡군의 승격을 반영하고, 충주목과 나주목의 강등 이전 지명을 기록하여 제작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전국의 군현과 산맥, 하천, 부속 도서 등을 정밀하게 묘사하였으며, 만주 지역까지 포함하여 그린 점이 주목된다. 1640년대에 제작한 보기 드문 필사본 지도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정의
1640년~1644년, 당시의 영토 의식과 조선의 지리정보를 반영하여 제작한 필사본 지도.
서지사항

채색 필사본 전도로, 크기는 세로 128.5㎝, 가로 81㎝이다. 표제는 ‘팔역도(八域圖)’이며,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표기된 군현의 변천을 살펴보면, 전라도 능성현(綾城縣)이 1632년(인조 10)에 능주목(綾州牧)으로 승격되었는데, 「팔역도」에 능주목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이 지도가 1632년 이후에 제작되었음을 알려 준다. 또한, 1640년(인조 18)에 경상도의 가산성이 칠곡군(漆谷郡)으로 승격되었는데, 이 지도에도 칠곡군이 그려져 있어 1640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644년(인조 22)에 충주목(忠州牧)이 중원현으로, 1645년(인조 23)에 나주목(羅州牧)이 금성현(錦城縣)으로 강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도에는 여전히 충주목과 나주목으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팔역도」는 1640년에서 1644년 사이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성과 내용

전국의 군현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8도의 감영은 붉은색으로 표시하였고, 서울은 ‘경도(京都)’로 표기하였다. 산맥과 하천, 부속 도서들을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울릉도는 세밀하게 그렸으나 독도는 표기하지 않았다. 쓰시마섬[對馬島]과 만주까지 포함하여 그린 점이 특히 주목된다.

의의 및 평가

조선 전기에 제작된 지도들은 당시 영토 의식을 반영하여, 압록강두만강을 국경선으로 삼지 않고 만주 지역까지 포함해 헤이룽강[黑龍]江]을 국경으로 그렸다. 대부분의 조선 전기 지도들이 이러한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지도들이 소실되거나 분실되어, 현재 남아 있는 지도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팔역도」는 1640년대에 제작한 보기 드문 필사본 지도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당시의 영토 의식과 지리적 정보를 상세히 담아 만주까지 포함하여 그린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고지도집 편찬위원회, 『국토의 표상』(동북아역사재단, 2012)
이상태, 『한국고지도 발달사』(혜안, 1999)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박선영(서울대 HK연구교수, 역사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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