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군읍지』는 1899년 황해도 평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899년에 편찬된 평산군의 읍지는 현재 2종이 전해지고 있다. 1종은 본 읍지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며, 표제가 ‘광무삼년육월 일황해도평산군읍지’이다. 책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또 다른 1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인 『평산읍지』로, 표제가 ‘평산부읍지 황해도’이다. 군현 지도는 첨부하지 않았다. 평산군의 상황과 조선 후기 지역의 변화상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평산군읍지(平山郡邑誌)』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 『평산읍지(平山邑誌)』는 모두 1899년(광무 3)에 편찬하였다. 두 읍지의 내제를 확인해 보면, 『평산읍지』는 ‘광무삼년삼월일평산읍지(光武三年三月日平山邑誌)’로 1899년 3월에 편찬하였으며, 『평산군읍지』는 ‘광무삼년육월 일읍지(光武三年六月 日邑誌)’로 『평산읍지』 편찬 3개월 뒤인 6월에 편찬하였다.
이와 같이 3개월 차이가 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899년 4월경에 전국적으로 읍지상송령이 하달되었고, 5월경에 내무아문(內務衙門)으로 읍지가 수집되었는데, 『평산군읍지』는 바로 이 목적에 의해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무아문과 황실(皇室)에서 각각 5월8월, 1월12월에 읍지 편찬을 지시하였는데, 『평산읍지』는 이 목적에 따라 편찬한 읍지로 추정된다.
『평산군읍지』는 1책 15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9.5㎝, 가로 23.4㎝이다. 표제는 ‘광무삼년육월 일황해도평산군읍지(光武三年六月 日黃海道平山郡邑誌)’이고, 권수제는 ‘광무삼년육월 일읍지’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평산읍지』는 1책 17장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세로 18.9㎝, 가로 20.1㎝이다. 표제는 ‘평산부읍지 황해도(平山府邑誌 黃海道)’이고, 권수제는 ‘광무삼년삼월일평산읍지’이며, ‘이왕가도서지장(李王家圖書之章)’ 직인이 찍혀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이다.
『평산군읍지』는 책의 첫머리에 채색 필사본의 회화식 평산군 지도를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강계(疆界),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단묘(壇廟), 공해(公廨),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봉대(烽臺), 누정(樓亭), 사찰, 고적(古跡), 진보(鎭堡), 장절(壯節), 인물,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등으로 구성하였다.
『평산읍지』는 지도 첨부 없이 사계, 방리, 도로, 건치연혁, 군명, 관직, 산천, 성씨, 풍속, 단묘, 공해, 창고, 물산, 교량, 역원, 봉대, 누정, 사찰, 고적, 진보, 장절, 인물, 한전, 수전, 진공, 조적, 전세, 대동, 균세, 봉름, 군병 항목 순으로 구성하였다. 18세기 중반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수록된 「황해도 평산(黃海道 平山)」과 항목 구성 및 순서가 같다. 내용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시기의 차이가 있는 만큼 호구 수에 차이가 있다. 호구 수의 경우,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해서읍지(海西邑誌)』 1책에 실린 「평산군호부읍지(平山都護府邑誌)」와 같으며, 이는 『평산군읍지』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18세기 중반에 편찬된 『여지도서』부터 1899년 6월에 편찬된 『평산군읍지』에 이르기까지, 평산군의 읍지는 황해도 평산군의 전반적인 상황과 조선 후기 변화하는 지역의 모습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