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신라의 상화촌현(上火村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유산(幽山)으로 고쳐 양주(良州) 소관의 화왕군(火王郡)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태조 23)풍각으로 바뀌었고, 1018년(현종 9)밀양부의 속현이 되었다.
1684년(숙종 10)대구도호부의 임내로 하였다. 1906년청도군에 편입시켜 풍각면이 되었다. 신라 초기에 이곳을 상화라 한 것은 청도지역을 흐르는 자천(紫川)의 상류지역에 있는 들(野 : 火)이라는 데에서 나온 것 같다.
조선시대에는 청도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어 남쪽으로는 고로치(高老峙)를 넘어 영산(靈山)과, 호법현(胡法峴)을 지나 밀양과 이어지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북쪽으로는 대구와 연결되었고, 당시에는 풍각창(豊角倉)과 유산역(幽山驛)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