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백제의 골의노현(骨衣奴縣 또는 骨衣內縣)이었는데 신라의 영토가 된 뒤, 757년(경덕왕 16) 황양(荒壤)으로 고쳐 한양군(漢陽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풍양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포주(抱州: 지금의 포천시)의 속현으로 하였다가, 1427년(세종 9) 다시 양주에 예속시켰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별비면(別非面)과 내동면(內同面)을 합쳐 별내면이 되었으며, 1980년 남양주군이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였으며, 1995년 남양주군과 미금시가 통합되어 남양주시가 되었다.
지명 유래는 골의노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데 이는 ‘큰 고을’ 또는 ‘비옥한 고을’을 뜻한다. 이 지역은 서울 근교의 퇴계원(退溪院) 북쪽의 넓은 평야지역에 있어 예로부터 농작물의 생산이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옛 산성이 있었고, 왕산천(王山川)을 따라 올라가면 광릉(光陵)에 이른다.
부근에는 쌍수역(雙樹驛)이 있어 남쪽으로는 퇴계원, 북쪽으로는 포천(抱川)과 이어졌다. 동쪽으로는 봉수대가 있는 한이산(汗伊山)을 지나 가평에 이르게 된다. 서쪽은 수락산(水落山)·검암산(儉巖山)에 막혀 있다. 태종이 이곳에 행차하였던 풍양이궁(豊壤離宮)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