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숙형(叔亨), 호는 회봉(晦峯) 또는 외재(畏齋). 진양 출생. 아버지는 하재익(河載翼)이며, 어머니는 김해허씨(金海許氏)다.
13세에 사서·오경의 요의(要義)를 모두 익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고, 17세에 당대의 명유 허유(許愈)를 만날 수 있었으며, 24세부터는 성리학(性理學)을 논하기 시작하였다.
27세 때 스스로 쓴 『도문작해(陶文酌海)』의 서(序)를 부탁하기 위해 곽종석(郭鍾錫)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고, 29세 때에는 이승희(李承熙)·장석영(張錫英)·송준필(宋浚弼) 등과 교유했으며, 안동·선산·성주 등지의 선현들의 유허지를 순례하고 많은 선비들과 사귀었다. 그 뒤 명산대천은 물론 동서남의 해안 일대와 명승고적, 중국의 공자·맹자·주자의 묘(廟)까지 순례하려 했으나 만주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저술로 『주어절요(朱語節要)』 10권을 편찬했고, 『도문작해』 6권 및 『명사강목(明史綱目)』 18권을 저작하였다. 만년에는 『동시화(東詩話)』를 엮었는데, 정인보(鄭寅普)는 그 서문에서 “동국(東國)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진기한 시화” 라고 극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유현(儒賢)들의 학문과 연원을 체계 있게 정리한 『동유학안(東儒學案)』 30권을 완성하였다. 『해동명장열전(海東名將列傳)』, 일제하의 우리나라 국민 정신 계발을 위한 「국성론(國性論)」 3편과 주기론자(主氣論者)들이 주창한 「성사심제론(性師心弟論)」에 대해 2편의 변(辨)을 지어 그 부당성을 지적했고, 심성론(心性論)의 대성인 「심위자모설(心爲字母說)」 5편을 지었다. 하겸진을 위해 세운 덕곡서당(德谷書堂)에서는 1957년부터 사림들이 매년 석채례(釋采禮)를 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