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백원 ()

하백원의 만국전도와 동국지도 / 만국전도
하백원의 만국전도와 동국지도 / 만국전도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규남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치행(穉行), 효일(孝一)
규남(圭南)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81년(정조 5)
사망 연도
1844년(헌종 10)
본관
진주(晉州)
출생지
화순
주요 관직
형조좌랑|석성현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규남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치행(穉行)·효일(孝一), 호는 규남(圭南). 화순 출생. 아버지는 하진성(河鎭星)이며, 어머니는 장택고씨(長澤高氏)로 고위겸(高撝謙)의 딸이다. 송환기(宋煥箕)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03년(순조 3)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808년 스승 송환기가 선현을 모독하였다는 죄목으로 삭직되자 송환기를 변백하여 벼슬을 회복시켰다.

1810년 농민들을 위하여 물을 뿜어 올리는 자승거(自升車)를 제작하였으며, 이어 1811년에는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업적이 세상에 알려져 1834년 음직(蔭職)으로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임명되었고, 1838년(헌종 4) 형조좌랑에 올랐다.

그 뒤 종묘령(宗廟令)을 거쳐 1841년 석성현감에 나아갔으나 토호(土豪)와의 알력으로 이듬해 보령으로 귀양갔다. 다음 해 바로 풀려나고, 1844년 사헌부지평이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성리설(性理說)에 치우친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며 농공상고(農工商賈)도 학문임을 주창하였다. 경전(經傳)은 물론 성신(星辰)·율력(律曆)·산수(算數)·전례(篆隷)·도장(圖章) 등에 두루 통달하였다. 특히, 하백원이 만든 자명종(自鳴鐘)·계영배(戒盈盃)·항흡기(缸吸器) 등은 하백원의 깊은 과학정신에서 나온 것이었으나, 석성현감으로서 귀양갈 때는 바로 이러한 일들이 죄목이 되기도 하였다. 즉, 선비가 괴이한 술수를 쓴다는 것이었다. 저서로는 『규남문집(圭南文集)』을 남겼으며, 작품으로는 「만국전도(萬國全圖)」·『영모화(翎毛畵)』 등이 있다.

참고문헌

『규남문집(圭南文集)』
『사마방목(司馬榜目)』
『헌종실록(憲宗實錄)』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