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치행(穉行)·효일(孝一), 호는 규남(圭南). 화순 출생. 아버지는 하진성(河鎭星)이며, 어머니는 장택고씨(長澤高氏)로 고위겸(高撝謙)의 딸이다. 송환기(宋煥箕)의 문인이다.
1803년(순조 3)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808년 스승 송환기가 선현을 모독하였다는 죄목으로 삭직되자 송환기를 변백하여 벼슬을 회복시켰다.
1810년 농민들을 위하여 물을 뿜어 올리는 자승거(自升車)를 제작하였으며, 이어 1811년에는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업적이 세상에 알려져 1834년 음직(蔭職)으로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임명되었고, 1838년(헌종 4) 형조좌랑에 올랐다.
그 뒤 종묘령(宗廟令)을 거쳐 1841년 석성현감에 나아갔으나 토호(土豪)와의 알력으로 이듬해 보령으로 귀양갔다. 다음 해 바로 풀려나고, 1844년 사헌부지평이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성리설(性理說)에 치우친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며 농공상고(農工商賈)도 학문임을 주창하였다. 경전(經傳)은 물론 성신(星辰)·율력(律曆)·산수(算數)·전례(篆隷)·도장(圖章) 등에 두루 통달하였다. 특히, 하백원이 만든 자명종(自鳴鐘)·계영배(戒盈盃)·항흡기(缸吸器) 등은 하백원의 깊은 과학정신에서 나온 것이었으나, 석성현감으로서 귀양갈 때는 바로 이러한 일들이 죄목이 되기도 하였다. 즉, 선비가 괴이한 술수를 쓴다는 것이었다. 저서로는 『규남문집(圭南文集)』을 남겼으며, 작품으로는 「만국전도(萬國全圖)」·『영모화(翎毛畵)』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