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된 청동기시대 북방식 고인돌. 지석묘.
내용
이 고인돌의 발굴보고는 1927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조사복명서(調査復命書)가 있는데 이것에 의하면 발굴된 3기의 고인돌은 모두 판석으로 석곽을 짜고 그 위에 개석을 올려 놓은 북방식이었으며, 그 속에서 무문토기 파편(그 당시에는 무문토기가 연구되지 않았던 때라 일본인 조사자들은 일본의 청동기시대 토기인 야요이식[彌生式]토기라 호칭), 석촉·석도(石刀)·지석 등을 수습하였다고 한다.
이 때 수습된 유물들은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지역의 고인돌은 원래 7기였으나 일제시 소년교도소를 짓는다고 6기는 없애버리고 1기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1년 소년교도소를 늘린다고 중구 송학동자유공원 내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옮겼다가 1990년 시립박물관이 연수구 옥련동 현 위치로 이전함에 따라 다시 옮겼다. 현재 학익동 일대는 시가지와 주택지가 되어 더 이상의 고인돌은 확인할 수 없는 형편이고 유물도 수습할 수 없었다.
다만 학익동 일대에는 연경산에서 흘러내린 바위가 풍부해 지금도 고인돌로 쓰임직한 거석(巨石)을 종종 볼 수 있어 고인돌 건립에는 편리한 장소였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 『한국지석묘(고인돌)유적 종합조사·연구』(문화재청·서울대학교박물관, 1999)
- 『인천시사』(인천직할시역사편찬위원회, 1993)
- 『고속도로 문화유적지표조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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