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조선의 영역이었으며, 위만조선이 지배하다가 서기전 81년부터 동옥저의 소유가 되었다. 그 뒤 고구려가 영유하여 곡포현(鵠浦縣)이라 하였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학포로 고치고 금양군(金壤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안변군에 예속시켰고, 조선시대에는 한때 학포사(鶴浦社)로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통천군에 이속시켜 흡곡면이 되었다. 지명의 유래는 오압산(烏鴨山)에서 뻗은 산줄기가 학포를 감싸고 남과 북에서 해안으로 뻗쳐 있어 마치 학이 날개를 펴서 감싸안은 듯한 지형의 생김새에서 나온 것이다.
남쪽에 있는 천학포(天鶴浦, 또는 鶴浦)나 패천(沛川)에 걸쳐 있는 학포교(鶴浦橋) 등 학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특히, 학포교는 조선의 태조가 말을 타고 이 다리를 건너다 말이 실족하여 다리 아래로 떨어지려는 것을 태조가 말을 잡아 끌어올렸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남쪽의 흡곡(歙谷)과 북쪽의 안변을 연결하는 도로가 있었다. 원수대(元帥臺)는 해안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