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신라시대의 관직.
내용
이들은 이른바 한림대의 학사직(學士職)으로, 이 관직에는 문장과 학문에 능한 사람들이 주로 임명되었다. 특히 한림대의 최고 관직인 한림랑은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당대의 문사(文士)들로써 충당하였고, 6두품 출신이 이 관직에 많이 진출하였다.
그리고 한림랑에는 관등이 사찬(沙飡) 정도인 사람이 임명되었다.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명문(銘文)의 서문과 사(詞)를 찬술한 사찬 김필오(金弼粤), 창림사무구정탑원기(昌林寺無垢淨塔願記)를 지은 김입지(金立之), 대안사적인선사비명(大安寺寂忍禪師碑銘)을 지은 최하(崔賀), 헌덕왕대에 견당사로서 활동한 김인규(金仁圭) 등은 모두 한림랑의 관직을 역임했던 사람들이다.
880년 경에 한림대가 서서원(瑞書院)으로 개명됨에 따라 한림랑은 서서원 학사(學士)로 바뀌어 신라 하대 문한기구의 중추적 존재로서 존속하였다.
참고문헌
- 「나말려초(羅末麗初) 근시기구(近侍機構)와 문한기구(文翰機構)의 확장(擴張)」(이기동, 『역사학보(歷史學報)』77, 1978 ; 『신라골품제사회(新羅骨品制社會)와 화랑도(花郎徒)』, 한국연구원,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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