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좌참찬, 대사헌,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16년 재령군수로 있을 때에 대북파(大北派)의 음모로 일어난 해주옥사(海州獄事)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곧 석방되었으나, 10여년 동안 은거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동부승지가 되고, 이어 좌부승지가 되었고, 다음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경기도관찰사로서 난을 평정하고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자하였다.
1628년 형조참판으로 동지의금부사를 겸하여 류효립(柳孝立)의 모반사건을 다스리고 그 공으로 정2품에 올랐다. 이해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좌참찬·대사헌을 거쳐, 예조·형조·공조의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평소 독서를 즐겼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영사원종공신(寧社原從功臣)으로서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기언(記言)』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전고대방(典故大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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