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대관, 시어사, 이부시랑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151년 내시 윤언문(尹彦文)이 괴석(怪石)을 모아 수창궁(壽昌宮) 북쪽에 가산(假山)을 만들고, 그 곁에 만수(萬壽)라는 작은 정자를 지어, 누런 비단으로 벽을 입히는 등 사치를 다하여 사람의 눈을 현혹하게 하니, 왕은 자주 이곳에 들러 그들과 함께 환락을 다하였다.
이 때 시어사(侍御史)로서 어사중승(御史中丞) 고영부(高瑩夫) 등과 대궐에 나아가 3일 동안 엎드려 이들을 내칠 것을 상소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자 두문불출하다가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신숙(申淑)의 상소로 관철되었다.
뒤에 이부시랑(吏部侍郎)에 승진되었다. 그러나 이원응(李元膺)과 사이가 좋지 않아 파직되었다가 왕이 인제원(仁濟院)에 따로 불사(佛寺)를 지을 때 이를 맡았던 이원응이 죽자 복직되어 그 공사를 인계받아 완성하였다. 이 공으로 은(銀)과 비단을 받았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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