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토의 규모나 고분군의 전범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지만 1972년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긴급 구제발굴 결과에 따르면 고분군의 범위는 이웃 구릉과 경지 일부에 걸쳐 넓게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상백리 고분군은 함양읍에 소재하는 백천리(白川里) 고분군으로부터는 동쪽으로 약 20㎞ 떨어져 있다.
유구는 장축을 남북 또는 동서로 하는 무질서한 형태였고, 할석으로 사방을 겹으로 쌓아올린 구덩식돌덧널(竪穴式石槨)을 매장시설로 하는 고분으로, 경작으로 봉분은 이미 많이 훼손되고 지하유구만 조사되었다. 모두 8기의 고분이 조사되었는데 매장시설은 냇돌(川石)로 축조한 돌덧널이고 길이 3∼4m, 너비 1m 내외, 깊이 1.2m 정도 되는 중소형에 속한다. 토기를 비롯한 많은 부장유물이 수습되었는데 그 중에는 발걸이(등子)를 비롯한 마구류와 비늘갑옷(札甲) 및 판갑옷(短甲)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삼각판을 못으로 고정시켜 만든 이 판갑옷은 그동안 한반도지역에서는 정식으로 발굴조사된 예가 없었고 일본지역에서는 이미 출토 예가 있었기 때문에 한·일 양 지역의 갑옷생산과 분배에 있어서 문제가 제기된 바 있는 유물이다.
이 고분군은 석곽이 너비에 비해 길이가 긴 형태로서 가야고분 중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것이다. 유물 또한 전형적인 가야식 토기를 부장하고 있어서 연대는 5세기경으로 추정된다.